썰렁한 방콕 '한류몰'…태국 리더 94% "한류 10년 이상 못갈 것"

新남방 개척시대, 넓어지는 경제영토
(3) '한류+α'로 승부하라

한국 연예인들 투자한 '한류몰'
개장 1년 넘었지만 손님 없어
'열고보자' 한류행사 잇단 무산

"저가 한국 관광상품 범람으로 애써 구축한 '한류효과'에 찬물"

'한류=성공' 공식 더 이상 안통해
"민·관 한류TF로 체계적 접근을"
방콕 중심가에 있는 ‘한류몰’인 쇼디시 건물.
방콕의 ‘홍대 거리’로 불리는 알씨에이(RCA·로열 시티 에버뉴) 한복판엔 일명 ‘한류몰’인 쇼디시(Show DC) 건물이 서 있다. 롯데면세점을 비롯해 한국의 싸이 등 유명 연예인들이 투자한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으로 작년 4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태국인은 거의 없다.간혹 면세점 쇼핑을 위한 관광버스가 찾아오지만 텅빈 쇼핑몰을 채우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면세점 안엔 한국산 화장품조차 없다. 온통 태국산 제품뿐이다. 면세점 입구에 서 있는 실물 크기의 한국 연예인 입상이 무색할 정도로 관광객들은 발길을 돌렸다. 롯데가 태국 정부만 믿고 지난해 4월 면세점을 열었다가 정작 공항 면세품 인도장 허가를 여태껏 받지 못해 한국 제품을 전시조차 못하고 있는 탓이다.

쇼디시몰의 부진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진출 공식 중 하나인 ‘한류=성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한류의 원조 격인 태국에서조차 “한류는 시한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위태로운 한류 열풍한국경제신문은 한태교류센터(KTCC)와 공동으로 태국 정·재·언론계 주요 리더 85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설문조사를 했다. 태국 국방부 고위관료 및 주요 기관장과 대기업, 언론사 임원들이 포함됐다. 이들의 대부분인 94%는 한류 효과가 얼마나 지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10년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이 중 ‘5년 미만’이라고 답한 이들도 38%에 달했다.

태국은 2001년 ‘가을동화’, 2005년 ‘대장금’ 등의 드라마 방영 이후 한류 열풍이 휩쓴 대표 나라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한류의 인기도와 성장성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을 분류했는데 태국은 인도네시아와 함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태국은 연간 1억2000만달러(약 1363억원, 2016년 기준)의 한국 화장품을 수입한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한국 화장품을 많이 소비하는 국가다.

태국의 여론 주도층인 응답자 전원이 한류가 자신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32%)거나 ‘상당히 영향을 끼친다’(78%)고 답했다. 태국 재계 1위인 센트럴그룹의 부사바 치라티왓 부회장은 “한류 덕분에 한국 문화와 관광을 향한 태국인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 저가의 여행상품이 범람하면서 한국의 이미지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염려스럽다”고 했다.국영방송 채널인 MCOT의 리티크라이 통마라이 부사장도 “최근 한류의 성공만 믿고 일단 하자는 식의 이벤트가 너무 많다”며 “행사 품질도 예전만 못해 한류의 지속적인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만 해도 한·태 수교 60주년을 기념한다며 한국의 대형 방송사와 기획사가 주최한 아이돌 콘서트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티켓 환불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방콕시장을 지낸 아피락 코사요틴 전 태·한친선협회 회장도 “앞으로 한류를 어떻게 한 차원 발전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격화된 일본 견제

한류의 힘에 의지해 태국 진출을 시도한 기업들은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인 11번가도 매출 부진에 철수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 열풍을 타고 ‘치맥’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인 교촌치킨도 진출 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KOTRA 방콕 무역관 관계자는 “최근엔 한국 상품을 모방한 짝퉁들이 편의점과 대형마트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며 “저가 상품군으로는 태국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 3분기 해외 매출은 5% 증가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43%나 감소했다.한류가 만개하기도 전에 일본의 견제가 시작됐다는 점도 우려할 만한 요소다. 태국은 ‘작은 일본’으로 불리는 나라다. 2013년 무렵부터 한류의 영향력이 본격화되자 일본도 2015년부터 재팬엑스포를 열어 문화 공세를 시작했다. 규모는 한국의 10배 수준이다. 중앙정부와 산하기관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등까지 총동원해 물량 공세를 펴고 있다. KOTRA,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원 등 정부기관이 각각 행사를 하고, 지자체도 거의 비슷한 콘텐츠로 제각기 한류 이벤트를 벌이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태국 정부 자문관으로도 활약 중인 홍지희 KTCC 센터장은 “일본의 텃밭인 태국에서 한류 덕분에 어렵게 형성된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않으려면 획기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국은 외국 문물의 유입을 막지 않는 개방적인 나라로, 눈높이가 높은 만큼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고 정부 차원에서 한류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는 등 부처별 칸막이를 없앤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방콕=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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