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디지털 프로젝트만 215개…月 단위 사업계획 '실시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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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메타넷·액센츄어 디지털 비즈니스 포럼두산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반영해 사업계획을 최근 크게 수정했다. 5년간 20조원 가까운 원자력 발전 설비 수출 기회가 한꺼번에 날아간 탓이다. 위기 상황에서 두산이 꺼내 든 카드는 디지털 전환이었다. 공장 자동화로 인건비를 절감한다는 식의 ‘작은 목표’가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매출을 늘릴 기회로 삼았다. 기존 연 단위, 월 단위 사업계획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데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제품만 파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부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사회적 책임과 기업 활동을 연결하는 것에도 디지털 기술을 과감히 적용했다. 두산그룹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맡고 있는 형원준 사장은 “디지털 전환은 총수 이하 경영진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며 “두산은 215개의 디지털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형원준 두산그룹 최고디지털책임자
2시간 비행하는 드론·담수화 설비 등에도 디지털 기술 적용
첨단기술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아이언맨 인재' 몰려
의사결정 리얼타임으로 빨라져형 사장은 15일 ‘디지털 비즈니스 포럼 2018’에서 세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사용자의 경험에 공감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다시 설계하는 혁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 사장은 우선 디지털 전환이 의사결정을 빨리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다수 기업이 과거 월 단위로 사업계획을 세우고 평가하는 데 익숙했는데 델, 월마트, 삼성전자 등이 주간 단위로 잘게 쪼개 대박을 쳤다”며 “최근에는 자라, 유니클로 등이 하루 단위로 변경하는 등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업체 등이 리얼타임(실시간)으로 더 빠르게 사업계획을 세운다”며 “기획부터 연구개발, 구매 등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도록 두산도 체질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굴삭기 생산은 부품 조달부터 조립, 판매 등의 전 과정을 동시에 진행해 과거 몇 달 걸리던 것을 궁극적으로 하루 만에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시장의 다양한 수요를 제품에 구현하는 데도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협동로봇이 대표적이다. 두산의 한 계열사는 본드 도포 작업을 하는 로봇을 최근 개발했다. 본드 칠은 작업자들이 꺼리는 공정이다. 형 사장은 “협동로봇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는 중소·중견기업”이라며 “이들의 수요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게 과거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10명이 있으면 10명 모두 필요한 게 다 다르다”며 “디지털은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아이언맨처럼 첨단기술 제공해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디지털 기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두산은 내년 초 두 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는 드론용(무인항공기) 수소연료 전지를 내놓을 예정이다. 기존 상업용 드론이 평균 20분가량 날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6배 이상 배터리 성능을 높인 것이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수소연료로 바꿔 가능했다. 이 드론은 미국 경찰이 실종자 탐색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두산은 또 물부족 국가에는 담수화 설비를, 지진 등 재난 지역에는 굴삭기를 지원하는 식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와 사회적 책임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형 사장은 “테크놀로지(기술) 플랫폼을 일하는 환경에 적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아이언맨 인재 경영’이란 말로 표현했다. “의리, 성실, 근면을 내세우는 이소룡 같은 인재의 시대나, 007처럼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지금은 인공지능(AI)의 조언을 바탕으로 혼자서 지구를 지키는 아이언맨 같은 인재가 대우받는 시대”라고 했다.
형 사장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가 제공하는 첨단기술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를 원한다”며 “이런 기업에 인재가 더 몰릴 것이기 때문에 회사가 적극적으로 디지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