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성난 흑인 여자' 비아냥 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희망의 메신저 됐나

비커밍

미셸 오바마 지음 / 김명남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 564쪽│2만2000원
“나는 마지못해 공인으로 살기 시작한 뒤로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여성으로 치켜세워졌고, ‘성난 흑인 여자’라고 깎아내려 졌다. 이런 말로 나를 비방한 사람들에게 특히 어느 대목이 못마땅하냐고 묻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난’인지, ‘흑인’인지, ‘여자’인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는 자서전 《비커밍(Becoming)》 서문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럴 만도 하다. 미셸은 시카고 변두리인 사우스사이드에서 태어나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시의 정수처리장 노동직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와 직장 일을 번갈아 가며 두 남매를 키워냈다.할아버지의 조부모는 둘 다 노예였고, 미셸의 고조부는 제재소 노동자였다. 온갖 형태의 차별 때문에 흑인들은 수입, 기회, 꿈마저 제약당했다. 미셸은 ‘성난, 흑인, 여성’에 가난까지 더해 ‘마이너리티’의 모든 요소를 갖춘 여자애였다.

《비커밍》은 이런 환경을 딛고 프린스턴과 하버드대를 거쳐 변호사가 되고, 마침내 퍼스트레이디가 된 미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기다. 이야기는 미셸이 어릴 적 살았던 사우스사이드에서 시작된다. 이 동네는 원래 백인과 흑인들이 어울려 살았으나 백인들이 차차 동네를 떠나면서 가난한 흑인 동네로 변했다. 미셸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아이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많이 웃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라고 가르쳤다. 어머니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지시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알려줬다.타고난 영특함과 지기 싫어하는 승부 근성은 미셸이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간 원동력이었다. 시카고 최고의 공립학교였던 휘트니 영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프린스턴대를 1차 지망으로 정한 미셸에게 학교의 진학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프린스턴에 갈 재목인지 잘 모르겠구나.” 상담실을 나서던 미셸은 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는 속으로 되뇌었다. “두고 보라지.” 예닐곱 달 뒤, 프린스턴의 입학허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대학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프린스턴은 극도로 백인적이고 대단히 남성적이었다. 남학생 수가 여학생의 두 배를 넘었다. 신입생 중 흑인은 9%에도 못 미쳤다. 미셸은 “처음에는 낯선 유리 화분에 뚝 떨어진 것처럼 껄끄럽고 불편했다”고 회고했다.

버락 오바마와의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 것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서 처음 취직한 법률회사 ‘시들리 앤드 오스틴’의 시카고 지점에서였다. 이때 미셸이 멘토 역할을 맡았던 신입 인턴이 하버드 법대 학생 버락이었다. 어느 날 밤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버락이 미셸에게 물었다. “키스해도 되나요?” 성공의 사다리를 차근차근 올라가던 미셸의 삶은 버락과의 만남 이후 다른 궤도를 달리게 된다.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유년기부터 버락을 만나기까지의 성장기가 1부, 버락과 결혼해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을 펼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가 2부, 대통령으로 재임한 8년의 시간과 퇴임 후까지가 3부다. 2009년 백악관에 입성한 미셸은 아동비만과 전쟁을 벌였고, 건강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식품회사들과 전선을 형성했다.

미셸의 자서전은 지난 14일 세계 31개 언어로 동시에 출간됐다. 올해 초부터 출간이 예고되면서 미국 민주당 지지층을 비롯한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고, 판권 계약 때부터 사상 최고액(730억원 추정)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오바마 부부에 대한 가짜뉴스와 비방을 멈추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유감과 분노의 감정도 감추지 않고 풀어놨다.

“버락이 물러난 뒤로, 나는 속이 뒤집히는 뉴스를 너무 많이 접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리면 분통이 터져서 밤에도 잠을 못 이루곤 한다. (중략) 가끔은 대체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그러면서도 미셸은 절망 대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자신을 남들에게 알리고 들려주는 것,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는 것, 자신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그리고 기꺼이 남들을 알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무언가가 되는 일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