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커피원두 등급은 누가, 어떻게 매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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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9
(34) '커피 감정사' 커퍼커피 원두를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사람들을 ‘커퍼(cupper)’라고 합니다. 전 세계 원두 산지에 흩어져 있는 이들은 그해에 수확한 원두를 가장 먼저 접하고,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평가합니다. 얼마 전 페루에서 온 커퍼(사진)로부터 수업을 받았습니다.
커핑 테이블에는 세 종류의 원두가 각각 5개의 잔에 담겨 있었습니다. 다섯 단계에 걸쳐 평가가 이뤄지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컵에 담긴 커피로 첫 단계부터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라네요.첫 단계는 분쇄된 원두의 향을 맡는 것입니다. 잔마다 8.5g의 커피 원두를 담습니다. 잔 안으로 코를 깊이 집어넣고 향을 맡습니다. 마른 커피의 향을 평가하는 것이지요. 짧게 ‘킁킁, 킁킁’하면서 맡는 사람도 있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기도 한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물을 부어 ‘아로마’를 점검합니다. 잔마다 11㎎의 물이 적당하답니다. 물의 온도는 92~96도. 이 단계에서 꽃향기, 벌꿀향, 너트향, 캐러멜, 유칼립투스 등 맡을 수 있는 향들을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세 번째는 커피잔의 물 표면을 쪼개는 ‘브레이킹’ 단계입니다. 물을 붓고 3~4분이 지나면 분쇄된 커피 원두가 물의 표면으로 떠오릅니다. 이때 스푼으로 표면을 살짝 서너 번 동그랗게 저어줍니다. 표면이 흐트러지면서 순간 치고 올라오는 강한 향을 맡아보는 것. 초보라서 그런지, 감각이 둔해서인지 2단계와 3단계에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다음 단계는 거품을 걷어내는 ‘스키밍’입니다. 스푼 2개를 양손에 쥐고 ‘크러스트’라 불리는 표면 부유물을 걷어냅니다. 커피를 맛보기 위해 하는 작업인데 이게 참 어렵더군요. 한 번에 걷어내기가 어려워 전문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단계로는 커피를 후루룩 소리 내며 들이마시는 ‘슬러핑’입니다. 이 단계는 70도 정도로 식은 커피를 순간적으로 흡입해 맛과 향을 느끼는 작업이랍니다. 입안에 커피를 ‘후루룩’ 재빠르게 들여보내는 과정에서 치아 사이로 통과한 미세한 커피 입자가 혀와 입안에 골고루 퍼지게 하는 것이지요. 입안에 살짝 머금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실제 마시지 않고 뱉는 커퍼도 많답니다. 마실 때 나는 맛과 뱉을 때 나는 맛이 다르답니다.
슬러핑을 할 때는 꽤나 거친 소리가 납니다. 뜨거운 국물을 마실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이렇게 슬러핑하는 이유는 공기 끝에서 나는 맛, 커피가 부스러지면서 나는 향을 코끝으로 더 미세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라네요.커핑 체험을 한 뒤 얻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무슨 향이 숨어 있을까, 어디에서 온 맛일까’를 상상하는 재미가 생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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