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터뷰] '첫 폐업' 가상화폐거래소 대표 "법은 없는데 하려면 온통 걸림돌…한국선 사업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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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준 지닉스 대표“올해 중순 해외 투자를 유치했는데 은행이 돈을 안 받아주더군요. 입금 처리를 거부해 결국 투자가 무산됐어요. 그때 느꼈죠.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는 이것도 안 되는구나. 법도 규제도 없다는데 막상 사업을 하려면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다양한 방해를 받았습니다.”
"아직도 금융위 연락조차 못 받았다"
은행 입금거부에 해외투자 유치 좌절
폐업 결정 후 처음 언론과 인터뷰한 한·중 합작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의 최경준 대표(사진)는 이처럼 털어놓았다. 금융당국이 위법 소지를 이유로 검찰 수사를 의뢰한 ‘펀드형 거래소 토큰’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작동하는 규제가 많아 불가피하게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지닉스는 오는 23일 운영 종료한다. 정부 규제 때문에 폐업을 결정한 첫 사례다. ‘트리거(방아쇠)’는 지닉스가 지난달 출시한 ‘ZXG 크립토펀드’였다. 해당 암호화폐 펀드를 토대로 발행한 토큰이 현금 기능을 갖는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었다. 시장 반응도 좋았다. 펀드 1호는 1000이더리움을 금세 모았다. 경쟁률 12대 1 수준, 출시 2분여 만에 완판됐다. 모집 규모를 크게 늘린 2호 공모도 계획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응용상품이 아닌 ‘불량상품’으로 봤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 지닉스가 선보인 ZXG 크립토펀드는 현행법상 특정 유형의 증권과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새로운 유형의 암호화폐 파생상품을 기존 법으로 완벽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탓이다. 실제로 지닉스는 출시 전 법무법인(로펌) 문의 결과 불법 소지가 적다는 의견을 받았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면 ZXG 크립토펀드는 중국계 펀드 제네시스 캐피털이 발행·운용하는 것이다. 지닉스는 ZXG 토큰을 거래소에 상장했을 뿐이다. 한국 기업이 이러한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상징성이 중요했다.때문에 재판까지 가면 지닉스에 승산이 있다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최 대표는 폐업을 결정했다. “전방위적 행정 압박을 느꼈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법정 공방에서 이기더라도 당국과 척 지고 사업을 하긴 어렵다는 판단을 한 듯했다.
지닉스가 펀드의 불법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안 과정은 당혹스럽다. 최 대표는 “평소처럼 아침식사를 하는데 우리가 법을 어겼다는 뉴스를 봤다”면서 “법적 검토도 마쳤고 정부 조사 같은 신호가 전혀 없었다. 뉴스를 보는 순간 멍했다.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 떠올렸다.
그는 “실제 불법 행위를 했는지 조사라도 한 뒤에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아직까지도 금융위로부터 직접 연락 받은 게 없어서다. “알아보니 금융위 관할이 아니라 직접 연락 않고 검찰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 등을 한다고 하더라. 관할도 아닌데 당사자 확인이나 통지도 없이 대뜸 불법이란 발표는 왜 했는지 미스터리”라고도 했다.법정에서 다퉈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는다는 최 대표는 “그럼 뭐하나. 재판하는 동안 회사는 아무 사업도 못하고 휴업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부담하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6개월 정도 개점휴업 상태로 거래소를 유지하는 데 약 2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후발주자로 은행 가상계좌 발급조차 못 받는 중소형 거래소 지닉스가 이정도 자금을 마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걸림돌에 막혔다. 3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홍콩 투자기관도 있었지만 해외 자금이 들어오려면 거쳐야 하는 은행 심사과정에서 입금 처리가 거부돼 끝내 무산됐다. 은행권은 올 초 금융당국의 일제조사 이후 최근까지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노터치’ 입장을 고수해왔다.
최 대표는 “은행 고위 관계자를 만나 설득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끝내 좌절됐다”고 귀띔했다.국내 암호화폐 업체들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법인계좌 발급과 해외 송금을 거부당하는 것은 지난 4월 한경닷컴 보도로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금의 입금 처리까지 거부한다는 사실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 대표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광고도 막혔다. 사무실 하나를 구하려 해도 암호화폐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대체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방면에서 방해 받았다. 이 사업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 아닌가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사업을 정리하며 금융위의 수사 요청에 따른 검찰 기소에도 대비하고 있다. 최 대표는 “문제가 된다고 해 크립토펀드 출시는 취소했지만 법적 문제까지 해결된 건 아니잖나. 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게 아니라,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 로펌을 선임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폐업을 결정하면서 30명 가운데 20여명의 직원만 남았다. 최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암호화폐 사업을 지속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단 한국에서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적어도 제대로 된 규제와 인프라가 갖춰질 때까지 한국 시장에서는 떠날 계획이다.“암호화폐 시장은 블루오션입니다. 그 판단은 변하지 않았어요. 계속 사업을 시도할 겁니다. 가능한 직원들과 함께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 무대가 한국이 되진 않을 것 같아요.” 야심차게 거래소를 설립하고 새 상품을 내놨던 젊은 창업가의 얼굴이 무척 수척해보였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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