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덮친 라돈 공포…지자체 측정기 대여 사실상 '무용지물'

대여 수량 부족·사용법 안내 부실…측정·관리 기준 없어 혼란 가중
부산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A 씨는 최근 전주의 한 아파트 욕실에 있는 화강암 재질의 선반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센터에 라돈 간이 측정기 무료 대여 서비스를 문의했다.하지만 대기인원이 많아 내년에야 대여가 가능하다는 말에 간이 측정기를 직접 구매했다.

A 씨가 직접 구매한 측정기로 화장실 선반에서 측정한 농도는 실내 공기질관리법에 따른 권고 기준치(200㏃/㎥)의 5배에 달하는 1천Bq/㎥이고 새벽 시간에는 1천600㏃/㎥까지 측정값이 올라가기도 했다.

측정결과와 관련해 간이 측정기 대여를 해주는 주민센터나 구청에 문의했으나 욕실 방향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황당한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A 씨는 답답한 마음에 원자력안전위원회, 국토부, 환경부에 차례로 문의했지만 "건축물은 다른 부처가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문제를 해결해 줄 마땅한 기준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A 씨는 "국가가 도와줄 수 없으니 시공사와 주민이 직접 분쟁을 해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시공사는 개인이 간이 측정기로 측정한 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시공사는 논란이 되자 뒤늦게 공기 질 측정 전문업체를 통해 정밀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시공사가 선정한 업체의 신뢰도를 의심하고 있다.

매트리스로 촉발된 1급 발암물질 라돈의 공포가 확산하자 지자체들은 지난 6월부터 앞다퉈 간이 라돈측정기를 구매해 무료 대여를 시작했다.생활 속 라돈 검출 우려가 있는 제품에 대해 소비자의 자가 진단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수량이 턱없이 부족해 사실상 대여하기 힘들고 측정 시간, 위치 등 정확한 사용법을 안내하지 못해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15일 부산시에 따르면 시는 총 337대의 간이 측정기를 보유하고 있다.

부산시가 총 210대를 구매해 각 주민센터에 1개씩 배포했고 기장군과 수영구, 북구, 연제구도 구비를 통해 관할 주민센터에 추가로 배분했다.

이용자보다 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인구밀집 지역은 2∼3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기준치 이상의 농도가 측정되더라도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이 부실하고 관련 규정도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생활제품부터 건축물까지 라돈 공포는 확산하는데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일차적인 검사 기구인 간이 측정기를 대여해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간이 측정기 외에 라돈 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비는 부산시가 1대, 부산보건환경연구원이 3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 또한 환경부가 공인한 장비가 아니다.

부산시 관계자는 "매트리스 등 피부에 닿는 제품과 대리석 등 건축자재는 측정 방법과 시간 등이 달라야 하는데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여해주는 공무원들도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이용과 후속 조치에 대한 안내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최윤영 부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간이 측정기를 대여하는 데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측정기준이나 관리기준 등의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일원화된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