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한국의 미래 책임질 혁신기업…코스닥 통해 키워내는 게 꿈"

"'조금 밑지며 살자' 赤字인생 철학…남들보다 빨랐던 성공의 비결"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 패스
'매순간 포기 않고 최선' 좌우명 덕분…미국 연수땐 美변호사·회계사도 합격

외환위기 시절 관료로 최일선서 분투
밤새워 만든 부실채권정리기금법, 금융시스템 붕괴 막는 데 밀알 '보람'

코스닥 부진이 최대 고민…혁신기업 육성엔 자본시장이 적임
"저도 벤처펀드 손실 20% 넘지만 경제 펀더멘털 튼튼…회복 믿어"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56)은 ‘튀는’ 사람이 아니다. 인상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수더분하다. 조르듯 “살아온 얘기를 해달라”고 하면 “기자에게 내 얘기 하는 게 낯뜨겁다”며 연신 손사래를 친다. 30년간의 공무원 생활로 신중함이 몸에 밴 느낌이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을 위해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 사리원불고기에서 정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정부과천청사와 서울 도심의 중간이라 공무원 때부터 자주 찾았다”며 “불고기는 물론 육전과 냉면도 맛있다”고 소개했다.이 식당은 상표권 분쟁으로 한때 ‘사리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가 대법원 판결로 이름을 되찾았다. 사리원은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로 불고기와 냉면 등이 유명한 곳이다. 정 이사장과 반주를 곁들인 저녁자리가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 처음엔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인생 스토리’를 풀어냈다.

정 이사장은 “‘적자생존’을 추구한다”고 했다. 적자(赤字)를 보는 삶, 조금 밑지면서 사는 삶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행정고시를 패스했다. 대학 3학년 때다.

30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2015년 한국증권금융 사장으로 민간에 나온 뒤 지난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될 때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승승장구의 비결이 밑지는 삶이라니….끝까지 풀었더니 결과는 1등

정 이사장은 1962년 부산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 둘,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부산 대동고를 졸업하고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가 1983년 행시(27회)에 합격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정규돈 국제금융센터 원장, 권구훈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골드만삭스 아시아담당 선임이코노미스트) 등이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 동기다. 3학년 때 행시에 붙은 사람은 동기 중 그밖에 없었다.뜨겁게 달궈진 불판에 사골 육수에 재운 불고기가 올라가자 지글지글 경쾌한 소리를 냈다. 고기가 익자 정 이사장은 고기와 파를 함께 집어 들었다. 그는 “달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이 집 불고기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정 이사장의 좌우명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다. 그는 “남들보다 앞서 고시에 붙었던 것도 똑똑해서라기보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1983년 행정고시에서 나흘간 7개 과목을 치렀다. 3일째는 선택과목인 회계학 시험을 봤다.

시험문제를 접한 정 이사장과 수험생들은 엄청나게 어려운 수준에 다들 경악했다. “50점짜리 하나에 25점짜리 두 개 등 세 문제를 푸는 시험이었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중간에 나가야 하나 싶었습니다.”하지만 그는 ‘절대 먼저 손을 놔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평소 쌓아둔 회계지식을 총동원해 끈질기게 풀어나갔다. 결과는 회계학 과목 1등이었다. “합격 후 알아보니 내가 70점으로 1등이었어요. 평균 점수는 50점이었고요. 회계학 점수를 잘 받았던 게 합격으로 이어졌죠.”

부실채권정리기금 산파역

술잔이 오고가던 중 이 집 별미인 육전이 나왔다. 달걀옷을 입혀 지져낸 육전을 베어 물자 진한 육즙이 입안에 스며들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공무원 시절 추억으로 이어졌다. 정 이사장은 행시를 3학년 때 붙었기 때문에 학교를 1년 더 다니고 28회 합격생들과 교육을 받았다. 행시 28회 중에 홍윤식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친한 동료가 많다.

그는 옛 재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법무담당관실, 외자정책과 등을 거쳤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외환위기 시절엔 재정경제원 산업자금담당관실 서기관이었다. 정 이사장은 “그때가 공무원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97년 초부터 이미 외환위기의 징후가 나타났어요. 그해 1월 한보, 3월에 삼미그룹이 연이어 부도를 냈습니다. 대기업 채권을 들고 있던 금융회사까지 위험해질 우려가 있어 부실채권 처리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죠.”

정 이사장은 서울 강남대로에 있던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캠프’를 마련하고 밤을 새워가며 부실채권정리기금 조성의 근거가 될 법안 마련에 매달렸다. 그 결과물이 1997년 8월 제정·공포된 ‘금융기관 부실자산 등의 효율적 처리 및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설립에 관한 법률’(자산관리공사법)이다. 이 법에 따라 그해 11월 부실채권정리기금이 출범했다.

정 이사장이 산파역을 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은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밀알’이 됐다. 기금은 2002년까지 5년간 39조2000억원을 투입해 180여 개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111조6000억원을 인수했다. 한국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은 일등 공신 중 한 명이란 평가를 받는다.

리더의 지시는 명확해야

정 이사장은 미국 뉴욕주 변호사와 미국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2000년 8월부터 3년 동안 시카고상품거래소로 연수갔을 때 땄다. 그는 “밤늦게 퇴근하기 일쑤였던 한국 생활과 비교하면 여유가 있었다”며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느니 뭐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ICPA는 회계를 아니까 금방 땄는데, 변호사 시험은 두 차례 떨어졌습니다. 2003년 귀국 전에 마지막으로 본 시험에서 간신히 붙었죠. 귀국하고 나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귀국해선 2004년부터 재정경제부 인력개발과장을 지냈다. 고용정책 등을 기획하는 자리였다. 이때 장관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1주일에 한 번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했어요. 과장은 장관실에 들어가기 힘든데, 파견법과 기간제근로자법 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직접 보고했죠.”

누군가에겐 호랑이 같던 이 전 부총리에게 그는 크게 깨진 적이 없었다. “지침을 명확하게 줬습니다. 핵심에서 벗어난 일은 잘 시키지 않았어요. 저도 거기에 맞춰 핵심을 간명하게 보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이 전 부총리와 함께 이윤재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재정경제비서관을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다. “두 사람 모두 아랫사람에게 하는 지시가 명확하고 허례허식을 싫어합니다. 조직의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좇아 하려고 노력하지요.”

자본시장의 역할이 중요

종업원이 들어와 식사로 물냉면과 비빔냉면 중 어떤 걸 고를지 물었다. 정 이사장은 평양식 물냉면을 선택했다. 그는 2015년 12월 민간으로 나와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됐다. 이후 지난해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무원 시절 재무부 금융국, 금융위원회 은행감독과장과 감독정책과장 등을 지내 ‘금융통’으로 통한다.

정 이사장은 “한국을 먹여살릴 혁신기업을 키우는 데 자본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장 환경은 녹록지 않다. 지난 1월 927.05로 사상 최고점을 찍었던 코스닥지수는 현재 690선으로 떨어졌다.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 금리 상승 등 대외 악재가 덮쳤다. 그가 4월 가입한 코스닥벤처펀드는 20% 넘는 손실을 내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잘 믿지를 않는데…, 사회생활 시작하고 나서 요즘이 가장 힘듭니다. 공무원 시절 가장 바빴다고 할 수 있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어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무기력한 느낌도 들고요.”

그러나 정 이사장은 여느 때와 같이 ‘그래도 어쨌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니까요. 이번 파고를 잘 넘으면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약력

△1962년 부산 출생
△1981년 부산 대동고 졸업
△1983년 제27회 행정고시 합격
△198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6~19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산업담당관실 서기관
△2004~2005년 재정경제부 인력개발과장
△2005~2006년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
△2014~2015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2015~2017년 한국증권금융 사장
△2017~ 한국거래소 이사장

■한국거래소는…

한국거래소는 2005년 1월 기존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 등 4개 기관이 통합하면서 설립된 주식회사다. 대주주는 31개 민간 증권회사로 지분 86%를 나눠 보유하고 있다. 본사는 부산, 서울 사옥은 여의도 증권가에 있다.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한국의 모든 상장 주식이 거래된다. 장내 채권과 장내 파생상품도 한국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지난해 매출은 3469억원, 순이익은 715억원이다. 주 수입원은 거래 수수료다. 한국형 증권시장 모델을 수출해 라오스와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거래소 설립을 도왔다.
■정지원 이사장의 단골집 서초사리원
'특제 소스'에 찍어먹는 생등심 불고기 일품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도 소개된 국내 대표 불고기집이다. 간판 메뉴인 사리원 불고기(1인분 3만2000원)는 한우 등심을 얇게 썰어 불판에 살짝 익힌 뒤 이 음식점만의 특제 소스에 찍어서 먹는 불고기로 유명하다.

이 소스는 설탕과 인공 조미료를 빼고, 파인애플 사과 오렌지 셀러리 등 다양한 과일과 채소의 즙을 활용해 만든다. 등심의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을 과일·채소 소스가 산뜻하게 받쳐줘 색다른 식감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고기 외에도 생갈비(4만9000원) 한우육전(2만3000원) 물냉면(1만1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후식으로 나오는 식혜는 맥아(엿기름)로 직접 만든다.

사리원불고기를 운영하는 나성윤 대표는 북한 황해도에서 사리원식 불고기 가게를 하던 외할머니에게서 1992년 가게를 물려받았다. 나 대표는 서초점을 포함해 서울과 수도권에 9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필리핀에도 9개 점포를 열었다.명사들도 사리원을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 지휘자 금난새 씨, 가수 백지영 씨 등이 단골이다.

임근호/오형주/김동현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