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춤추게 하는 지휘자"…유럽이 주목하는 '한국 클래식의 미래' 홍석원

한경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바람 음악회' 이끈 홍석원 지휘자
"클래식, K-POP과 같은 음악의 한 장르일뿐"
"장애인, 오히려 열정 뛰어나…음악적 호흡 최고"
훤칠한 키에 중저음의 목소리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했던 지휘자의 모습과 상당히 가까웠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홍석원 지휘자는 권위 의식보다 따뜻함과 배려가 묻어나던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가 16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홀에서 열린 제 14회 한경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기적을 노래하는 소울 플레이어' 협연의 지휘자로 나섰다.

이 날 공연에서 홍 지휘자는 음악으로 장애를 극복한 소울 플레이어의 두 연주자 송우련(21·바이올린), 이한결(24·트럼펫)씨와 함께 협연했다. 이에 앞서 공연 전 연습에 몰두하는 그와 인터뷰를 나눴다.▲ 유럽에서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 일정이 많을텐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현재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며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공연 일정이 많았는데 마침 일주일 시간이 딱 비었을 때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서 연락이 왔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뜻깊은 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공연에 대해 설명을 들어보니 굉장히 뜻깊은 연주였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 준비 기간이 부족했을 것 같은데
직업이 지휘자이다보니 공연이 상당히 많다. '신바람 음악회'를 준비한 시간이 짧다면 짧다고 볼 수 있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주관적이다. 직업이니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준비를 잘해야 한다. 큰 무리가 따르지는 않았다. 이번 연주가 끝나면 또 바로 오스트리아로 넘어간다. 당장 내일 연주가 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직 젊으니까 그런 건 괜찮다.

▲ 같이 협연하는 두 분에게 장애가 있다. 소통 방식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싫어한다. 장애가 아니라 우리와 다를 뿐이다. 그냥 저는 똑같다. 그 분들을 한 사람의 음악가로 보는거지, 그분들이 저희랑 다르다고 해서 다르게 대하면 오히려 그게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국과 다르다. 항상 느끼는 건 장애인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사회의 동등한 일원이라고 본다. 저도 유럽에서 오래 생활해서 그게 몸에 익숙해지다보니 장애인이라는 인식을 거의 안하게 됐다. 송우련, 이한결 씨도 그냥 함께 공연하는 협연자다. 물론 약간 다를 수는 있다.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약간 다른 분들이기 때문에 때에 맞게 조금 조절해줘야 하는 부분은 있다. 그게 어려움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한경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분들께서 더 협조를 잘해주셨다. 연습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송우련, 이한결 씨 두 분의 실력이 굉장히 좋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고 전혀 느끼실 수 없을 거다.

▲ 음악적 호흡은 어땠나?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사실 공연 준비를 하다보면 누구든 어려움은 있다. 하지만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때문에 나오는 어려움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들과 준비하면서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에 불과했다. 오히려 음악 열정이 뛰어났기 때문에 음악적 호흡이 더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 한경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만남도 처음이다.
맞다. 첫 만남이다. 젊은 오케스트라다. 저도 젊다. 개인적으로는 3일 간 작업하면서 느껴진 호흡이 참 좋았다. 저도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 경험이 많은데 하다보면 잘 안맞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그 오케스트라가 실력이 뛰어나도 저랑 작업 스타일이 다를 경우 준비 과정에서 애를 먹는다. 그런 게 잘 맞아야 좋은 연주가 나오는데 한경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굉장히 협조적이고 젊은 에너지가 있다. 또 뭔가 해보려는 게 있기 때문에 준비하면서 즐거웠다.

▲ 지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많은 음악가들이 그렇지만 저희 어머님이 현역으로 활동 중이시다. 부천시향 첼로 단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그 외 이모님이나 할아버지가 음악을 하신다. 아무래도 다른 분들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 음악이 워낙 좋다보니까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음악에도 악기나 성악 등 여러 분야가 있다. 지휘를 선택한 이유는?

어렸을 때 철이 없었다. 지휘자가 되게 멋있어 보이더라. 성격 자체가 혼자 연습하고 그러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같이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운동도 혼자 달리기 하는 것보다 족구나 농구 등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어린 나이에 봤을 때 지휘자들이 단원들과 호흡하고 화합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 일반인들에게 지휘자는 아직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지휘자를 쉽게 설명해준다면?

지휘자라는 직업이 1800년대 초반에 처음 생겼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음악을 시작하기 위해서 지휘가 생겼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다보니 잘 안맞았고 그걸 좀 더 전문적으로 조율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휘자가 탄생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휘자의 역할이 많아졌다. 음악적인 해석이나 악기를 통일시키는 방법 등 많은 부분이 지휘자의 권한으로 넘어왔다. 지금은 템포부터 음악의 성격들을 거의 지휘자가 좌지우지한다. 때문에 같은 곡을 똑같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해도 지휘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 혹자들은 지휘자가 무섭다고 하기도 한다. 본인은 어떤 스타일인가
저는 무섭다는 쪽은 절대 아니다. 근데 시대의 흐름이 있다. 예전에 세계 2차 대전에는 사회 분위기가 워낙 위에서 밑으로 찍어 누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지휘자가 왕으로서 단원들을 독재하듯 조종했는데 이제는 시대가 민주적으로 바꼈다. 거기에 맞춰 유럽 오케스트라들은 단원 중심의 시스템이 정착했다. 이제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상하관계가 절대 아니다.

어차피 같이 음악하는 건데 서로 교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단원들이 지휘자들 무서워하면서 쩔쩔매는 건 좋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서로 교류하고 같은 음악 동료로서 의견도 나누고 교감한다. 저는 그게 참 재밌다.

▲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 오케스트라의 차이점이 있다면?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유럽이 역사가 더 깊다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끼리 뭉쳐서 자기들만의 색깔을 내는 게 한국보다 조금 더 강하다. 빈필하모닉같은 경우는 상임 지휘자가 없다. 단원들 중심으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고 객원 지휘자만 초청한다. 그래서 단원들만의 전통적인 색깔이 항상 있다. 한국은 유럽에 비해 역사가 깊지 않으니 아직은 오케스트라 자체보다는 지휘자한테 조금 더 의지하는 부분들이 있다.

▲ 독일에서 유학했다. 작곡이나 지휘 분야는 독일이 선도한다고 들었다.

그것도 트렌드가 있다. 제가 유학하기 전에는 미국이 세계를 주도했다. 그런데 독일 쪽에서 "이래서는 안된다. 우리가 전통이 있는데~"라고 하면서 음악 학교에 대한 투자를 강화했다. 이후 트렌드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좋은 지휘자들이 많이 나온다. 어디가 더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항상 유행은 있다. 매년 다르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 공연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공연 준비하면서 느꼈던 모든 게 다 좋은 기억이다. 어떤 하나의 특정한 기억이 좋았다기보다는 제가 원하는 음악을 설득하면서 좋은 반응이 왔던 것 같고 항상 즐거운 기억, 재밌었던 기억만 남았다. 체력적으로 조금 힘든 것 말고는 다 좋았다.

▲ 클래식이 낯설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가 평소에 늘 하는 말이 있다. "클래식 공연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세요"라고 말한다. 모두가 정장을 차려 입어야만 하고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아서 폼 잡고 그러는 것보다 편안하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음악에 여러 장르가 있지 않나. K-POP도 있고 국악도 있다. 클래식도 그냥 음악의 한 장르다. 편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클래식이라고 격식 차리는 시기는 조금 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준비한 질문이 많았지만 인터뷰에 주어진 시간 많지 않았다. 밖에서는 조율을 끝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홍 지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땀을 흘리면서 공연에 대한 열정을 뿜어낸 그에게서 공연에 대한 책임감과 프로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일반 사람들도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가는 건 어떨까. 그 역할에 홍 지휘자가 앞장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홍석원 지휘자는 누구?
한국인 최초로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 오스트리아에서 오페라극장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홍 지휘자는 유럽과 아시아 클래식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지휘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지휘과 재학 시절부터(사사 임헌정 김덕기) 베를린 국립음대 지휘과 디플롬 과정과 최고연주자과정을 최고 점수로 졸업했다.

유학시절 그는 독일음악협회가 지정한 "미래의 마에스트로" 10인에 선발됐고 카라얀 탄생 100주년 기념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홍 지휘자는 하이팅크, 마주어, 블롬슈테트, 정명훈 등 세계적인 대가들로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유럽의 대표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도이체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슈투트가르트 남독일방송 교향악단, 브레멘 필하모닉, 본 베토벤오케스트라 등과 성공적인 연주를 마쳤다.

또한 오페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독일 라이프치히 오페레타 콩쿨에서 청중상을 획득했고 스위스 베른 오페라극장, 독일 마이츠 국립극장 등 여러 국가에 데뷔해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성공을 통해 그는 30대 동양인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인스부르크 티롤주립극장의 수석지휘자로 선임됐다. 오스트리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자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를 성공적으로 지휘하면서 19회 공연이 전석 매진되는 폭발적인 흥행과 함께 평론가 및 언론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티롤 주 대표지인 티롤러타게스차이퉁은 "환상적인 음악! 지휘자 홍석원은 모든 관객들을 춤추게 했다"라고 평가했고 유럽 오페라 전문 잡지 메르케어는 "지휘자 홍석원은 오케스트라로 하여금 가장 이상적인 슈트라우스 소리에 도달하도록 했다"고 극찬했다. 덕분에 그는 보수적인 오스트리아 음악계에서 인정받아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유럽에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한편, 한경닷컴 창립 19주년 기념 ‘제 14회 오케스트라의 신바람 음악회’는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주관하고 서울산업진흥원 하이서울브랜드가 후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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