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 위기 이제 시작일 뿐, 내년 상반기 '퍼펙트 스톰' 올 수도"

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

'줄도산' 공포 휩싸인 부품업계 CEO들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내년 상반기엔 ‘퍼펙트 스톰(초대형 위기)’이 닥칠 수도 있어요.”

매출이 조(兆) 단위에 달하는 한 중견 자동차 부품사 대표의 토로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부품사들이 내년 상반기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잇따라 쓰러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건넨 말이다.

자동차 부품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줄도산’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2년 가까이 공장 가동률 하락과 자금난을 견뎌왔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들이 ‘퍼펙트 스톰’을 우려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현대·기아자동차와 한국GM 쌍용자동차 르노삼성 등 완성차업체들의 3분기(7~9월) ‘실적 쇼크’에 따른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완성차업체들이 1차 협력사에 추가 ‘CR(cost reduction·원가절감)’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다. 인천 남동공단에 공장을 둔 한 1차 협력사 대표는 “이러다가 2·3차 협력사와 같이 쓰러질 판”이라고 털어놨다.최악의 자금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은행권이 어음 할인이나 기존 대출 상환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등 여전히 ‘돈줄’을 죄고 있어서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부품사 대표들은 최근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로 몰리고 있다.

대부업체 L사 대표는 “은행이나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부품사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상담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쟁쟁한 부품사들이 돈을 꾸러 몰려드는 걸 보니 씁쓸했다”고 귀띔했다.

부품사마다 수익성 악화와 자금난에 이어 매출마저 꺾인 점도 위기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경북에 공장을 둔 한 부품사 대표는 “올 들어 공장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지면서 올 3분기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줄었다”며 “성장이 한계에 부닥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공장 문을 닫고 빚잔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사 단체(회원사 250여 곳)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을 이끄는 신달석 이사장(디엠씨 회장)은 “내년 상반기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며 “완성차 한 대에 부품 2만 개가 들어가는 자동차산업 특성상 주요 부품업체 몇 곳이 쓰러지면 수십 또는 수백 개의 2·3차 협력사가 한꺼번에 줄도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