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가 美·中 무역전쟁 희생양 될 가능성 대비해야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반도체의 수요 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쟁 환경마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중국 반독점당국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한국과 미국 메모리 반도체 3사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말 이들 3사의 중국 내 사무실을 기습 방문해 조사를 벌였던 중국 당국이 조사 사실 자체를 공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량의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는 중국 당국자의 발언 수위가 높은 데다, 중국 언론이 벌써부터 과징금 추정치를 보도하는 등 3사의 ‘위법’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이번 조사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주시해야 할 처지다. 통상마찰이 지금보다 더 격화되는 상황도 우려스럽지만, 중국의 반독점 조사가 미·중 간 물밑 협상 의제로 올라가는 경우도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 문제 해소와 관련해 반도체 수입을 대폭 확대할 수 있다는 의도를 이미 내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사가 미국 반도체 기업은 쏙 빠지고 한국 기업들만 타격을 입는 미·중 간 ‘밀약(密約)’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중국의 이중성은 사드 보복 등에서 이미 경험한 대로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기업과 미국 반도체 기업을 교묘히 분리하면서, 자국의 ‘반도체 굴기’를 위해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기술이전 등을 더욱 압박해올 것이다. 지식재산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은 미국 기업과는 협력하고 한국 기업은 무시하는 전략으로 빠져나가려 할 공산이 크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로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초격차 전략’으로 미국은 물론 중국 경쟁기업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국가 경제적으로도 비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올해 3분기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0% 줄었다. 국익을 지키기 위한 통상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