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10)] 신남방정책과 美 '인도·태평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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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올해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남북대화나 북·미 협상을 나타내는 것만이 아니다. 오늘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세는 중국의 부상, 미·중 무역전쟁, 미·중과 중·일 등 강대국 간 경쟁구도, 보호무역주의 등 자국 중심주의 경향으로 불확실성과 불가측성이 커지고 있다. 이 지역의 새로운 질서 재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야말로 불확실성 그 자체다.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 파푸아뉴기니, 일본 및 호주를 순방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미국의 신(新)아시아 전략인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하게 주장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9일자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목적과 추진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번영과 안보 및 투명한 정부, 법의 지배, 기본권 보호 등 3대 축으로 돼 있으며, 미국은 크든 작든 모든 나라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번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배가 아니라 협력을 추구하고 권위주의와 침략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전략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
인도·태평양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으로 처음 제시했고, 이에 따라 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협의체(QUAD) 회의가 개최됐다. 이번에 펜스 부통령은 인도·태평양 정책이 미국의 확고한 정책이며, 앞으로 같은 처지의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미국의 가치를 위협하는 어떤 세력에도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관련국들의 입장은 복잡한 현실적 셈법으로 인해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인 일본은 지난달 아베 신조 총리의 방중에서 보듯이 중국과 경쟁보다는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제3국의 인프라 사업에 공동 진출하기로 함으로써 일본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결과가 됐다. 인도도 중국에 압력을 계속 가하는 데 부담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세안은 더욱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비동맹 중립을 추구하는 데다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도 있으므로,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에 말려들기를 원치 않고 있다. 특히 대외관계의 핵심인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이 미·중 간 대결 구도로 인해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명칭과 관련해서도 ‘아시아’라는 표현이 빠진 데 대해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지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신남방정책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 중요한 과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지향하는 가치와 구체적인 사업에는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적극적으로 협력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첨예화돼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은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가 피하고 싶은 구도일 것이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도 아세안 정상회의 폐막연설에서 “아세안이 어느 한쪽만을 편드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는 아세안 등 처지가 비슷한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해 새로운 지역구도가 특정국을 겨냥하지 않고 포용적으로 발전해 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신남방정책의 구체적인 추진 전략과 성과를 설명하고, 내년 한·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할 것임을 밝혔다. 아세안 정상들은 우리의 신남방정책을 높이 평가하고 적극 협력할 것임을 다짐했다. 이는 중견국가로 성장한 한국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과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국 신남방정책은 포용적이어야
신남방정책은 지난 1년간 많은 가시적인 진전을 이뤘다.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아세안과의 교역은 전년 동기(10월 기준) 대비 7.6% 늘어나 올해 1600억달러를 넘어서고 인적 교류도 꾸준히 증가해 올해 처음 100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신남방지역의 인프라 사업 수주 규모도 중동을 능가해 최대 수주처로 부상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양적인 확대뿐 아니라 질적인 고도화를 추구하는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 ‘더불어 잘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 실현이 신남방정책의 비전이자 지향점임을 잊지 말자. 새로운 질서 재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과 기여를 할지, 호혜적인 협력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협력의 혜택을 어떻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할지, 주요국의 정책과는 어떻게 조화하고 차별화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것이 지속적인 신남방정책 성공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