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판사들의 '섣부른' 탄핵 운동

신연수 지식사회부 기자 sys@hankyung.com
“확정 판결로 처벌받을 때까지 어떻게 기다립니까? 국민들 관심이 이렇게 높은데….”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동료 판사들에 대해 “탄핵 소추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내놨다. 이날 찬성표를 던진 판사들은 여론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국민들의 사법 불신이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사법부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다.법원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너무 섣부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안팎에서 나온다. 재판은커녕 아직 김명수 대법원장이 적극 협조하겠다던 검찰 수사가 끝나기도 전이다. 벌써부터 재판 거래와 개입이 있었다고 단정 짓고 단체행동에 나선 법관 대표들의 태도는 법조인보다 시민단체에 가까워 보인다. ‘모든 피의자와 피고인은 유죄 판결 확정 전까지 무죄’라는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이날 회의엔 불참했으나 얼마 전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을 맡은 재판부 소속인 임상은 판사도 법관대표회의 일원이다. 과연 편견과 예단 없는 재판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급하게 방침을 내놓느라 일선 판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 법관 탄핵 의안은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6명이 제안한 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아 법관 대표 12명이 회의 당일 현장에서 발의했다. 투표 결과 찬성은 53명, 반대와 기권을 합하면 52명이었다. 법원 내부에선 53명의 목소리가 어떻게 3000명에 달하는 전체 판사를 대변할 수 있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판사들은 대부분 선고가 나기 전까진 특정 사건에 대해 입 열기를 꺼린다. 법적으로 결론 내리기 전에 판사가 예단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방해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구체적 사건에 관해 공개적인 의견 밝히기를 삼가거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관윤리강령도 있다. 일부 법관은 ‘법관 탄핵’이 ‘자기 살을 깎는 결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사법부의 불신을 부채질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