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금액의 크기는 비율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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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우리는 단순히 숫자로 표시된 금액보다 비율을 통해 해당 금액을 인식한다. 출장비로 2만원을 지급하는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어느 날 회사는 출장비를 3만원으로 1만원 더 지급하기로 했다. 직원들은 1만원 인상된 출장비를 상대적으로 크게 인식하게 된다. 그럼 연봉이 3000만원인 직원에게 1만원 많은 3001만원의 연봉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연봉이 출장비와 동일하게 1만원 인상됐지만 그 금액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느끼게 된다.
인상 금액은 1만원으로 같은 데도 출장비 상승분이 더 크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비율’ 때문이다. 출장비는 2만원의 50%인 1만원 상승했다. 연봉은 3000만원에서 1만원 상승한 것으로 인상률은 대략 0.03%다. 상승 비율이 매우 낮은 연봉 1만원 상승분을 훨씬 작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상황에서 해당 금액을 비율로 인식하는 습성은 소비행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다. 낭비적인 소비가 비율에 근거한 상대적 금액 인식에 기인한다는 얘기다.새집으로 이사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집을 구입해 이사하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새집으로 이사할 때 가구나 가전제품을 바꾸는 등 세간을 새로 장만한다. 5억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해 이사하려는 사람이 대형마트에서 500만원짜리 TV를 봤다. 대개는 5억원을 지출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무의식적으로 “그까짓 500만원쯤이야’하고 생각하며 평소보다 쉽게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TV 가격 500만원은 집값 5억원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덜컥 대형 TV를 사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저녁 반찬거리 비용 1만원에 비해 500만원짜리 TV는 50배 가까이 비싼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새 차를 구입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3000만원짜리 중형차를 구매할 때 옵션 비용은 약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몇십만원 추가하면 스피커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고, 또 얼마를 추가하면 선루프를 달 수 있다. 이렇게 옵션 몇 개만 추가해도 몇백만원을 더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옵션을 쉽게 추가하게 되는 것은 옵션 가격이 차량 가격에 비해 소액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구매욕을 돋우는데 ‘숫자’와 ‘비율’ 중 무엇이 더 적합한지 파악해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위해 ‘비율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해진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