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지속 성장하려면 끊임없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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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11
(39) 4차 산업혁명과 파괴적 혁신파괴적 혁신의 정의공고했던 고속복사기 시장과 컴퓨터 시장은 모두 작은 기업에 의해 무너졌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파괴적 혁신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는 그의 기념비적인 적서 《혁신기업의 딜레마》 《성장과 혁신》에서 혁신은 존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존속적 혁신은 기술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혁신을 의미한다. 한층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상위시장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향상되는 존속적 기술에 기반을 둔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성능이 점점 고도화되는 현상은 지속적 혁신의 결과다. 반면 성능은 뒤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술로 주류 시장이 아닌 다른 시장에 먼저 뿌리내렸다가 급격한 기술 개발을 거쳐 주류시장을 잠식하는 경우가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를 ‘파괴적 혁신’이라고 표현한다. 파괴적 기술은 고성능을 원하는 고객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성능은 조금 부족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기술을 원하는 시장에서 수용된다. 이후 급격한 기술 개발을 통해 주류 시장에서 통용될 만큼 성능이 향상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때문에 주류 시장의 기존 경쟁자를 넘어서게 된다.4차 산업혁명 기술과 파괴적 혁신
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기술들은
시장에 파격적인 영향 미치지만
반드시 파괴적이지만은 않아
파괴적 혁신 전략이 존속적 혁신을 바탕으로 경쟁우위를 유지하는 기업을 무너뜨리는 사례들로부터 기술을 ‘첨단기술’과 ‘재래 기술’로 구분하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방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존 기술들의 재조합이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모든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들이 ‘파괴적’인 것은 아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2015년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파괴적 혁신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 ‘파괴적 혁신’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와 무관하게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파격과 파괴는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차량이 필요한 승객과 이를 제공하려는 운전자를 연결하는 운송기업 우버의 성장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2009년 설립된 우버는 세계 500개 도시에서 운영되며 최근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9년 기업공개(IPO)를 앞둔 우버의 기업 가치가 무려 1200억달러, 우리 돈 136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3대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큰 금액이다. 이런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파괴적 혁신’의 정의에 빗대어 볼 때 우버에 ‘파괴적 기업’의 지위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저가시장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과 기술의 급격한 상승 없이 주류 시장의 고객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기업의 성장과 존속적 혁신의 역할
파괴적 혁신이 존속적 혁신의 대립 개념이지만, 이 자체가 존속적 기술혁신의 무가치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업의 성장에 대한 존속적 혁신의 기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빠른 성장을 위해 매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파괴적 혁신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문제는 존속적 혁신을 추구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후 파괴적 혁신의 위협과 기회를 의도적으로 무시할 때 발생한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존속적 혁신으로 경쟁우위를 점한 이후에는 존속적 혁신으로 추격하는 후발주자에게 팔아치우고, 새로운 파괴적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존속적 혁신을 파괴적 혁신으로 바꿀 힘을 갖고 있다. 이는 우버의 서비스 분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버 셀렉트는 고급 승용차를 부를 수 있는 서비스로 리무진을 대여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리무진을 부르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지만 비용을 절약하고자 하는 소비자 계층에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에 기고한 논문에서 우버가 비용과 가격의 이점을 유지하면서 기존 사업자와 대등한 혹은 우월한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을 찾아 리무진 비즈니스의 메인스트림에 진출할 수 있다면 파괴적 기업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가져올 진정한 의미의 ‘파괴’가 어떤 형태로 진전될지 지켜볼 일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고속복사기 사업 분야에서 제록스를 넘볼 경쟁자는 없어 보였다. 훨씬 규모가 컸던 IBM과 코닥도 제록스를 따돌리지 못했다. 당시 ‘제록스’라는 단어는 ‘복사하다’라는 동사로 쓰일 정도였다. 막강하게만 보인 제록스는 탁상용 복사기를 개발한 캐논에 최고 자리를 내준다. 메인 프레임 컴퓨터 시장의 강자는 IBM이었다. 거대 기업인 RCA, GE, AT&T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IBM에 맞섰지만 경쟁순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컴퓨터 시장의 승자를 바꾼 주인공은 대기업이 아닌 퍼스널 컴퓨터 제조업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