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人] 로봇공학도가 만든 '고양이 화장실'…30분만에 펀딩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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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IoT 기술 적용…'라비봇'"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가 전염성복막염(FIP)으로 1년 반 만에 갑자기 죽었어요. 평소에 배변 관리도 잘해주고 더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양이들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기로 다짐했죠."
배변 횟수·시간 등 자동 측정해 공유
해외 바이어 "글로벌 판권 사겠다" 관심
노태구 골골송작곡가 대표(사진·31)의 꿈은 로봇 공학도였다. 수학과 과학에 뛰어났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비 장학생 자격으로 일본 유학에 나섰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차에 애완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의 미래를 바꿔놨다."고양이가 갑자기 죽게 되면서 병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양이들은 비뇨기계 질환이 흔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배변 횟수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자동 화장실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귀국후 군장교 복무를 마친 그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받은 투자금 2000만원으로 2016년 여름 고양이 스마트 화장실 개발에 착수하고 이듬해 2월 '골골송작곡가'를 설립했다. 사명엔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 '골골'을 많이 만들어내는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렇게 연구에 몰두한 결과 탄생한 제품이 바로 고양이 스마트 화장실 '라비봇'이다. 국내 최초로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한 반려묘 화장실이다. 자동 모래 보충 시스템을 통해 화장실 내부를 청결하게 관리할 수 있고, 반려묘 배변 횟수와 시간, 체중 등을 측정이 가능하다. 고양이 체중 등 정보를 입력하면 스마트폰 앱으로도 사용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그는 시제품을 만들어 국내외 각종 박람회에 닥치는 대로 참가했다. 국내 궁디팡팡 캣페스타부터 미국 글로벌 펫 엑스포 등 미국과 유럽 박람회에서 라비봇을 본 바이어들의 반응은 좋았다. 모토로라(Motorola)와 미국 나스닥 상장자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러브콜'을 보냈다. 글로벌 판권을 사겠다고 한 회사도 있었다.국내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지난 3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펀딩 개시 이후 접속자들이 폭주하면서 30분 만에 3억원에 가까운 금액이 몰렸다. 반려동물 업계 펀딩 규모 가운데 역대 1위를 기록했다. 당초 예상했던 금액을 훨씬 뛰어넘은 수치다. 최근에는 한 투자사로부터 2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받기도 했다.
"사실 고양이 스마트 화장실의 경우 해외 여러 제품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모래 보충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관리하기 번거로운 편이에요. 내부 청소, 모래보충 등 계속 관리해 줘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울땐 불편하죠. 하지만 라비봇은 모래 교체 주기가 3주나 되고, 실제로 반려묘가 잘 사용하고 있는지 휴대폰으로 확인이 가능해 사용이 편리합니다. 디자인이 예쁜 것도 한 몫했어요.(웃음)"반려묘들이 흔히 걸리는 비뇨기계 질환은 배변 횟수와 양 등 배변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 문진 시 수의사들이 요구하는 문진표에 기본적으로 적어내야 하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가구의 경우 하루종일 반려묘의 상태를 관찰할 수 없어 답변하기 힘들다. 이 경우 라비봇을 이용하면 기록된 배변 정보를 통해 정확한 질병 진단에 도움을 준다. 가격도 30만원대(펀딩 가격)해외 제품 대비 저렴한 편이라 인기다.
"저렴한 데다 기등과 디자인이 괜찮다고 생각해주시는 고객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사후서비스(AS)도 미비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요즘엔 하루 2시간도 못 잘 정도로 일에 매진하고 있어요. 서비스 부분에서 잘 보완해서 양산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만들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고 싶습니다."
라비봇은 내년 상반기 정식 출시 예정이다. 아직 국내에서 선보이지 않았지만 미국 외에도 프랑스·러시아·호주·일본·대만·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많은 바이어들이 "언제 출시하냐"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력이 8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직원이 '비상 모드'에 있다."반려동물 전자기기는 앞으로 전망이 밝은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애완고양이 용품 박람회 '궁디팡팡 캣페스타'도 작은 지하 공간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세택(SETEC)에서 개최할 정도로 커졌어요. 세상이 각박할수록 반려동물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 전자기기 시장도 3~5년 안에 대기업도 뛰어들만큼 규모가 커질 것 같아요. 저희 골골송작곡가들도 고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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