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직원들 '노조와해' 부인…"무노조 경영, 나쁜 프레임"

"노조 필요성 못 느낄 만큼 만족스러운 직장 만들려던 것" 주장
'위법수집증거' 논란도 계속…위법 여부 판단 위한 증거조사·신문 진행키로
자회사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대거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과 계열사 전·현직 임원들이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박상범 전 대표와 최우수 현 대표, 최평석 전무 등 삼성전자서비스 전·현직 임직원들의 변호인은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노조와해 의혹 사건 첫 공판에서 "과욕으로 정상적 노조활동이 약간 방해된 것은 반성하지만, 검찰 공소사실의 상당수가 사실과 다르거나 법리적으로 죄가 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우선 "검찰은 피고인들의 행위를 노조 와해라는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하지만, 상당수는 회사와 고객 서비스를 위해 임직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협력사의 노조 대응 미숙으로 애프터서비스 업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대응한 것"이라며 "도급 계약의 범주 내에서 관여했으나 폐업을 사전 지시하는 등의 월권은 없었다"고 해명했다.이른바 '그린화 작업'이라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에 대해서는 "임직원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만족스러운 직장을 만드는 것"이라며 "불법적 노조 파괴가 아니라 업무여건 개선을 통한 서비스 질 제고가 목적이었다"고 항변했다.

그 과정에서 만든 문건들에 다소 과장되고 과격한 표현이 있으나 아이디어 차원에 불과해 실행되지 않았고, 삼성전자나 그룹 미래전략실과 공유한 적도 없다고 변호인은 덧붙였다.

이 밖에 노조원들의 민감한 정보를 빼돌리고 표적 감사를 하거나, 폐업 협력사를 지원하거나 사망한 노조원 유족에 무마용 돈을 건네고자 회삿돈을 빼돌린 의혹 등도 고의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혐의를 부인했다.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인사팀 부사장 등 삼성전자와 그룹 임직원들의 변호인 역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들의 변호인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란 개념이 외부에서 만든 나쁜 프레임에 불과하다며 "삼성에는 공정한 인사제도와 근무환경 개선 등으로 노사 갈등을 예방하고 직원을 존중하는 상생 경영의 문화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만든 '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두고도 "임금·복리후생 등 모두가 만족하는 근무환경을 조성해 노사관계가 안정화되면 노조가 필요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직원의 지위가 향상되리라는 기대 섞인 취지에 불과하다"고 변호인은 주장했다.아울러 이 문건은 실행을 전제하지 않은 내부 참고·교육용 자료에 불과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조와해가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순으로 전달·실행되는 공모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밖에도 삼성 측 편에서 노사협의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전·현직 경총 임직원과 전직 노사문제 전문 경찰관 등도 상당수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삼성 측의 변호인들은 기존 공판준비단계부터 거듭한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이날 1회 공판에서도 다시 내놓았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위해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던 중에 노조와해 의혹 관련 문건들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확보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적법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다는 것이 삼성 측 변호인들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는 위법 수집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를 대기 위해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당시 하드디스크를 빼돌리다가 체포된 삼성 직원 등에 대한 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 이상훈 삼성전자 의장은 "피고인들 대부분이 삼성 관계사들에서 일한다"며 "재판 횟수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방안을 좀 마련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 출석은 의무이고, 본인이 나오지 않으면 구인 등을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재판장은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유지하는 것은 선진국의 척도이기도 하다"며 "꾸벅꾸벅 졸며 재판을 받으셨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궐석 재판을 받는 것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외부의 인권단체에 호소했다고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