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100兆 시대-④<끝>] '벤처쇼핑' 손정의는 쿠팡에서 무엇을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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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기업에 통 큰 베팅한 손정의
단기수익보다 생태계 얻는 전략
쿠팡 통해 이커머스 주도권 실험
물류에 올인한 뒤 AI·데이터 얻어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지난 20일 한국 인터넷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함께 조성한 '비전펀드'로부터 20억달러(약 2조2600억원)의 투자를 따낸 것이다. 이 같은 투자는 손 회장이 2015년 쿠팡에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을 집어넣은 뒤 3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이번 손 회장의 투자 발표 전 쿠팡에는 비판이 따랐다. 돈 못 버는 거대 적자기업이란 꼬리표다. 지난해 쿠팡의 매출은 2조68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성장했지만 동시에 영업손실도 6388억원이나 기록했다. 역대 최대 적자폭이다. 손 회장으로부터 첫 투자를 받은 2015년부터 3년간 누적 적자만 1조7510억원에 이른다.
쿠팡의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이 다시 한 번 통 큰 베팅을 한 건 3년 전 내줬던 '숙제'를 쿠팡이 어느 정도 해결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는 손 회장이 쿠팡을 통해 얻으려는 목표가 단기적 수익이 아닌 '리테일 테크' 주도권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리테일 테크란 소매업에 적용되는 정보통신기술을 말하는데 빅데이터, 전자결제, 챗봇, 무인점포 등이 그 예다.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 하는 것은 쿠팡에 대한 이번 투자가 손 회장 개인이 아닌 손 회장이 이끄는 펀드로부터 이뤄졌다는 것이다. 3년 만에 다시 이뤄진 2.2조원 규모의 투자 주체는 소프트뱅크가 전 세계 투자 주체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조성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VF)'다.비전펀드는 손 회장이 2016년 1000억달러(약 111조원)의 자금을 조성해 만든 펀드다. 최대 출자자는 사우디 정부계 투자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다. 이 펀드는 세계 정보기술(IT) 생태계를 구축하고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에 대한 주도권을 직접 쥐겠다는 목표로 조성됐다. 단순히 단기간에 수익을 내고 빠지는 기존 펀드와 조성 취지가 다르다.
이 가운데 핵심은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이를 위해 비전펀드는 2016년 243억파운드(약 35조원)를 투자해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을 인수했다. 또 세계 최고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미국의 엔비디아에 40억달러(약 4조450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에는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플립카트 그룹에 25억달러(약 2조9000억원)을, 올 들어서는 GM 자율주행차 연구에 22억달러(2조5000억원)를 투자하는 등 글로벌 IT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밑바닥을 차근차근 다지고 있다.손 회장은 2016년 비전펀드를 조성하면서 '5년간 100개의 IT스타트업 기업 인수'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지난 5일 열린 제2사분기 결산설명회에서 "비전펀드는 하나의 테마를 향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AI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손 회장의 첫 투자 이후 물류센터를 짓고 배송기사를 대폭 확대하는 등 '물류'에 올인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가 '로켓배송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물류를 확대한 건 손 회장이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싶어하는 리테일 테크의 기반이 물류에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 대표가 손 회장으로부터 받아든 '숙제'도 물류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쿠팡은 약 1억2000만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경쟁사 중 가장 많은 규모다. 익일 배송이 가능한 '로켓배송' 상품은 400만개로 오프라인이 중심인 이마트보다 10배나 많다. 이를 다음날 바로 받아볼 수 있는 '로켓배송'과 자정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배송해주는 '새벽배송', 주문 후 몇 시간 만에 고객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로켓프레시' 등으로 나눠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로켓배송 품목에 한해 당일배송을 해주는 '로켓와우' 서비스까지 내놨다.물류가 형태를 잡아나가자 생태계가 조성됐다. 일 100만건의 로켓상품을 배송하는 '클라우드 플랫폼'과 쿠팡의 결제 서비스인 '로켓페이', 매일 3억건 상품 검색 결과를 볼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 등을 쿠팡은 확보했다. 머신러닝 기술로 소비자 개인 취향을 예측, 구매율을 높이는 작업도 한다. 쿠팡은 지난 3분기 약 500만건의 제품이 이 기능을 통해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 담긴 것으로 파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단기수익보다 생태계 얻는 전략
쿠팡 통해 이커머스 주도권 실험
물류에 올인한 뒤 AI·데이터 얻어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지난 20일 한국 인터넷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함께 조성한 '비전펀드'로부터 20억달러(약 2조2600억원)의 투자를 따낸 것이다. 이 같은 투자는 손 회장이 2015년 쿠팡에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을 집어넣은 뒤 3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이번 손 회장의 투자 발표 전 쿠팡에는 비판이 따랐다. 돈 못 버는 거대 적자기업이란 꼬리표다. 지난해 쿠팡의 매출은 2조68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성장했지만 동시에 영업손실도 6388억원이나 기록했다. 역대 최대 적자폭이다. 손 회장으로부터 첫 투자를 받은 2015년부터 3년간 누적 적자만 1조7510억원에 이른다.
쿠팡의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이 다시 한 번 통 큰 베팅을 한 건 3년 전 내줬던 '숙제'를 쿠팡이 어느 정도 해결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는 손 회장이 쿠팡을 통해 얻으려는 목표가 단기적 수익이 아닌 '리테일 테크' 주도권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리테일 테크란 소매업에 적용되는 정보통신기술을 말하는데 빅데이터, 전자결제, 챗봇, 무인점포 등이 그 예다.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 하는 것은 쿠팡에 대한 이번 투자가 손 회장 개인이 아닌 손 회장이 이끄는 펀드로부터 이뤄졌다는 것이다. 3년 만에 다시 이뤄진 2.2조원 규모의 투자 주체는 소프트뱅크가 전 세계 투자 주체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조성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VF)'다.비전펀드는 손 회장이 2016년 1000억달러(약 111조원)의 자금을 조성해 만든 펀드다. 최대 출자자는 사우디 정부계 투자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다. 이 펀드는 세계 정보기술(IT) 생태계를 구축하고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에 대한 주도권을 직접 쥐겠다는 목표로 조성됐다. 단순히 단기간에 수익을 내고 빠지는 기존 펀드와 조성 취지가 다르다.
이 가운데 핵심은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이를 위해 비전펀드는 2016년 243억파운드(약 35조원)를 투자해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을 인수했다. 또 세계 최고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미국의 엔비디아에 40억달러(약 4조450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에는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플립카트 그룹에 25억달러(약 2조9000억원)을, 올 들어서는 GM 자율주행차 연구에 22억달러(2조5000억원)를 투자하는 등 글로벌 IT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밑바닥을 차근차근 다지고 있다.손 회장은 2016년 비전펀드를 조성하면서 '5년간 100개의 IT스타트업 기업 인수'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지난 5일 열린 제2사분기 결산설명회에서 "비전펀드는 하나의 테마를 향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AI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손 회장의 첫 투자 이후 물류센터를 짓고 배송기사를 대폭 확대하는 등 '물류'에 올인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가 '로켓배송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물류를 확대한 건 손 회장이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싶어하는 리테일 테크의 기반이 물류에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 대표가 손 회장으로부터 받아든 '숙제'도 물류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쿠팡은 약 1억2000만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경쟁사 중 가장 많은 규모다. 익일 배송이 가능한 '로켓배송' 상품은 400만개로 오프라인이 중심인 이마트보다 10배나 많다. 이를 다음날 바로 받아볼 수 있는 '로켓배송'과 자정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배송해주는 '새벽배송', 주문 후 몇 시간 만에 고객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로켓프레시' 등으로 나눠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로켓배송 품목에 한해 당일배송을 해주는 '로켓와우' 서비스까지 내놨다.물류가 형태를 잡아나가자 생태계가 조성됐다. 일 100만건의 로켓상품을 배송하는 '클라우드 플랫폼'과 쿠팡의 결제 서비스인 '로켓페이', 매일 3억건 상품 검색 결과를 볼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 등을 쿠팡은 확보했다. 머신러닝 기술로 소비자 개인 취향을 예측, 구매율을 높이는 작업도 한다. 쿠팡은 지난 3분기 약 500만건의 제품이 이 기능을 통해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 담긴 것으로 파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