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30년전 파업 악몽' 걱정하는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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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연 산업부 기자 yeon@hankyung.com“1969년 국산 1호 세탁기인 백조세탁기를 생산한 이래 20여년 동안 업계 선두 자리를 지켜 온 금성사가 1989년 노사분규를 기점으로 경쟁사에 뒤지기 시작했을 때 이를 지켜보는 경영진의 심정은 필설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착잡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회고록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 쓴 내용이다. 지금은 LG전자에 노사갈등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만 해도 달랐다. 1989년 노조원들이 지게차를 몰고 붉은 깃발을 흔들며 창원대로를 질주하는 모습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에 국내 시장 선두 자리를 처음으로 뺏긴 것도 이 시기다.위기를 느낀 LG전자 경영진은 대립적인 노사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사(勞使)’라는 말 대신 ‘노경(勞經)’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노조와의 소통에 나섰다. 이후 노사관계는 서서히 달라졌다. 회사가 에어컨 판매 부진에 시달리자 노조가 자발적으로 판매 운동을 벌였다.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노사화합 모범업체’로 LG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LG전자가 인건비 상승을 감수하고 협력업체 소속 서비스센터 직원 39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한 데도 노조의 역할이 컸다. 지난 3월 임금 및 단체협상을 할 때 배상호 노조위원장이 이를 요구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협력사 직원 직고용 결정이 예상치 못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협력사 직원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LG전자 서비스지회’를 설립하면서다. 한국노총 소속인 현 노조의 ‘협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협력사 직원들이 새 노조를 세우면서 ‘노노 갈등’ 구도가 형성됐다.
새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와 정규직 전환 계약을 맺은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도 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는 LG전자 서비스지회의 커뮤니티 게시판에 “서자 같은 처지로 남지 않으려면 ‘친사노조’에 힘을 실어줘서는 안 된다.
금속노조 조합원이 많아져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서비스센터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LG전자가 내민 손이 노노(勞勞) 갈등이라는 ‘악수(惡手)’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