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망(網)'을 공짜로 여기면 통신사고 또 터진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이번 KT 통신망 장애는 IT 강국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드러냈다”며 “5세대(5G) 이동통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다고 자랑하지만 그 내실이 어떤지를 냉철하게 인정하고 확실히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주문대로 확실한 보완이 이뤄지려면 정부가 통신회사들을 다그치기에 앞서 그동안의 통신정책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KT 통신구 화재 사건만 해도 그렇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회사의 부실한 망(網) 관리를 원망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언제부터인가 통신정책이 요금인하 압박 수단으로 변질돼 망 관리나 투자는 정부가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흘러왔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보편요금제 등에서 보듯 아예 과기정통부가 요금을 설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강제적으로 요금 인하를 압박하면 사업자들은 당장 어디에선가 비용을 줄이려고 할 것이다. 망의 유지나 보완·개선 투자 등은 그만큼 우선순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통신회사의 망 투자 유인을 약화시키는 또 하나의 정책은, 모든 콘텐츠 사업자에 망을 차별없이 개방해야 한다는 ‘망 중립성’이다. 가뜩이나 트래픽이 폭증하고 무임승차 문제가 불거지는 마당에 정부가 이런 규제를 계속하면 사업자가 망의 품질을 개선하는 투자에 나설 이유가 없어진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망 중립성을 폐지한 이유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망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망을 공짜로 여기게 하는 이런 통신정책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한다고 해도 걱정이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서비스가 모두 5G 망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망에 무슨 문제라도 발생하면 이 모든 서비스가 순식간에 중단된다. 전국망 구축 등 28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 막대한 투자비용 조달도 문제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요금인하 압박, 망 중립성 등에서 벗어나 망 투자를 적극 촉진하는 방향으로 통신정책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