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밴드 주축 '하모니'…회원 절반 이상 기업인·회사원
입력
수정
지면C6
김낙훈의 스페셜 리포트음악은 삶에 지칠 때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자양분이다. 안한성 안흥상사 회장(80)과 이수문 아트센터화이트블럭 대표(70), 최중길 연세대 화학과 교수(65)는 평생 클라리넷을 반려자로 삼았다. 임준서 씨즈커피코리아 사장(76)은 사업에 지칠 땐 어김없이 기타를 잡는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목청껏 부르고 나면 힘이 솟는다. 50년 넘게 연주한 기타는 삶의 원동력이자 사업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원기소다.
'창단 30주년' 경기시니어앙상블의 최중길 회장·이수문 前 회장
20대 청년부터 80대 원로까지
60년差 나이 극복…무대 선봬
매년 정기 연주회는 물론
보육원·장애인시설서 재능기부도
동문 밴드 장수 비결은 '규율'
"지금도 선배가 부르면 달려가죠"
“노오란 샤츠 입은~.”
지난달 20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 콘서트홀. 흥겨운 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백 명의 관객이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창단 30주년을 맞은 경기시니어앙상블의 공연이다. 정장 차림의 단원 70여 명이 유병엽 지휘자(경희대 기악과 교수·트럼펫)의 지휘봉에 맞춰 힘차게 곡을 연주할 때마다 관중은 어깨를 들썩였다. 이날 공연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등 중후한 곡도 있었지만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의 모음곡과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현인의 ‘럭키서울’, 서영춘의 ‘서울 구경’, 장윤정의 ‘어머나’ 등 신나는 곡이 주류를 이뤘다.
경기시니어앙상블은 경기중·경기고 출신이 만든 브라스밴드다. 학창시절 취주악반(밴드부) 출신이 주축이고 나중에 악기를 배워 합류한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1988년 결성돼 올해로 30년을 맞았다.앙상블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중길 교수와 이수문 대표(전 회장)는 창단 초기부터 참여해온 멤버다. 두 사람 다 50년 이상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대한화학회장을 지낸 최 회장은 “경기시니어앙상블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급 고교 동문 브라스밴드”라며 “다른 고교 동문 밴드 결성의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회원은 1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회원 중 전·현직 기업인 및 회사원이 60여 명에 이르고 전·현직 교수, 의사, 법조인, 관료들이 나머지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클라리넷은 안한성 회장과 이수문 대표, 최 회장, 김도한 전 서울대 수학과 교수 등이 맡고 있다. 색소폰은 권영길 전 롯데항공화물 대표, 이현성 박사(의사) 등이, 플루트는 이필한 전 하이메트 부회장, 황정규 법무법인 하나 대표변호사 등이 담당하고 있다.
씩씩한 트럼펫은 이순우 전 상사중재원장, 임태환 의사, 유포니움은 김문식 전 아주대 보건대학원장, 우아한 호른은 김형철 전 제일화재 대표, 트롬본은 박세곤 전 경원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책임진다. 전광석화처럼 드럼 스틱을 휘두르는 사람은 이순병 전 동부건설 대표다. 이들 중 최고참은 80세인 안한성 회장과 이순우 전 원장이다. 젊은 멤버는 20대 초반이다. 60년 가까운 나이차를 극복하고 하모니를 만들어낸다.1945년 창단한 경기고 밴드부는 6·25전쟁 당시 피란지인 부산에서도 애국심 고취를 위한 각종 행사에 참가할 정도로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앙상블 산파역을 맡았던 안한성 초대 회장이 바로 6·25전쟁 중이던 1952년 부산에서 밴드부에 입단했다. 기업인인 안 회장은 초창기 연습장소 마련과 회식 등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기도 했다.
이 앙상블은 매년 정기연주회를 할 뿐 아니라 보육원·장애인시설 방문 연주, 악기 기증, 기업체·군악대 합동 연주, 관악제·생활오케스트라축제 참가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무리 동문 밴드라고 해도 이렇게 장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비결이 뭘까. 최 회장은 “학창시절엔 음악이 좋아 밴드부에 가입했지만 탈퇴의 자유는 없었다”며 “매일 방과후 한두 시간씩 악기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례조회, 개교기념일 행사, 봄가을 음악제는 물론 외국대통령 방한 때 환영퍼레이드에서도 연주했다”며 “엄격한 규율이 머리 속에 각인돼 지금도 선배가 부르면 무서워서 달려갈 수밖에 없다”며 웃음을 지었다.이수문 대표는 경기고 밴드부와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레인지후드업체 하츠를 경영할 당시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밴드부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음악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기 때문”이라며 “사업하면서도 힘들 땐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번 밴드부는 영원한 밴드부”라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