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표류에 '반쪽 강사법' 우려…"바늘만 있고 실은 없다"

대학 지원금 550억 통과 '진통' 예상…삭감시 시간강사 대량해고 현실화할듯
시간 강사의 신분 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강사법)이 논의 8년 만에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시행에 필요한 예산 지원 여부가 불투명해 법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예산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재정적 부담을 느낀 대학들이 되레 강사 규모를 줄이면서 '대량 해고'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 교육부와 대학가에 따르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강사법은 내년 8월 시행된다.

새 법에 따라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임 강사는 교원 지위를 얻게 된다.임용 기간은 1년 이상, 재임용 심사를 받을 권한은 신규임용 기간을 포함해 3년간 보장받게 된다.

방학 중 임금을 받을 수 있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예산이다.국내 대학 수와 강사 수 등을 바탕으로 교육부가 추산한 추가소요 재원은 연 700억∼3천억가량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공립대보다 2만원가량(시간당) 낮은 사립대 강사료를 국공립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방학기간 4개월간 임금을 계속 지급하는 등 최대치로 추산하면 3천억가량이 소요될 것"이라며 "4대보험료와 퇴직금 등만 고려하면 700억원 정도가 더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예산에 부담을 느낀 대학들이 법 취지와 반대로 시간 강사 축소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는 대목이다.실제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어 국공립대학은 물론 사립대에 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사총협 회장인 김인철 한국외대 총장은 "대학이 여러 형태로 강사법 시행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노력 중인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 지원이 반영된 상태에서 법이 시행돼야 한다는 게 사립대 총장들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대학을 대상으로 한 예산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가 법 시행 이후 2020년 2월까지 대학을 지원하고자 당초 책정했던 예산 630억원이 기재부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지만 최근 국회 교육위는 550억원의 지원안을 통과시켰다.

이 가운데 450억원은 시간 강사의 방학 중 임금 지원에, 나머지 100억원은 강의역량 강화 지원사업을 통해 우수강사 육성에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부처 안에서도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입장은 다르다.

교육부는 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기재부는 사립대에 사업비가 아닌 인건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사 임금 지원 명목으로 책정된 450억원 가운데 약 100억원은 국립대, 350억원은 사립대 몫이어서 예산안이 국회 예결위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사립대 지원 예산이 삭감된다면 시간 강사 대량 해고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 요건은 갖췄지만, 현실적으로 필요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늘만 있고 실이 없는' 상황 때문에 강사들이 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 대학들은 이미 시간 강사 축소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지역 주요 대학들의 경우 최근 강사법 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 개설과목을 축소하고 전임교원의 강의를 확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공과목 수나 각 과목 분반 수를 줄이고, 정교수의 강의 시수를 늘리는 등의 방안이어서 강사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대학공공성강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대학공대위) 등 대학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우려대로 대학들은 강사법을 회피하려고 온갖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며 "'시간강사 제로'를 목표로 대량해고, 전임교수 강의 확대, 온라인 강의를 포함한 대형 강의 확대 등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들은 "강사법 관련한 예산을 안전장치 없이 대학에 지급하면 대학에서는 강사의 처우 개선과 관계없는 곳에 예산을 써버릴 우려도 있다"며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철저히 감시해달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