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애국심 경연장' 된 디지털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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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란 지식사회부 기자 archo@hankyung.com주한 미국대사관 등이 지난 28일 고려대에서 연 ‘국경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 주권 지키기’ 토론회는 구글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에 대한 성토장 같았다. 객석에서는 “(외국 기업으로부터) 세금 좀 걷어서 국내 IT업계를 키우자는데 뭐가 잘못됐냐”는 식의 발언도 터져나왔다.
구글의 서버를 반드시 한국에 두게 해서 과세 근거를 마련하자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과 서버설치법 제정안 관련 논의에서는 ‘애국심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업계 종사자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민족의 사학인 고려대에서 미국계 기업들의 이익만 주장하는 내용의 토론회가 열린다는 것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을 규제했을 때 부작용을 냉정히 살펴보자는 토론회 취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명순대 고려대 법학대학원장이 개회사에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했지만 허사였다.하지만 이날 토론회 패널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보면 무턱대고 반대할 일이 아니었다. 조슈아 멜처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데이터가 (국경에 막히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면 국내총생산(GDP)이 3.5% 늘어난다”며 “상품을 교역했을 때보다 (경제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서버를 한국에 두겠다고 고집하지 않을 때의 순기능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독일은 구글세 부과를 주저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데 나라마다 서버가 있다면 자율주행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멜처 연구원이 “한국은 데이터를 활용해 제조업의 가치를 높이는 ‘상품의 디지털화’ 분야에서 잠재력이 크지 않느냐”고 되물은 이유다. 조장래 한국MS 상무는 변 의원의 개정안을 ‘19세기 쇄국주의’에 비유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시대에 데이터를 꽁꽁 묶어두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라며 “한국의 성장동력을 얼마나 갉아먹게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 돈을 벌려는 외국계 회사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무조건 반대만 해서 될 일인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