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고용세습, 그 참을 수 없는 불공정함

공공기관의 불법 고용세습은 기회의 약탈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는 연목구어
대기업 노조의 고용승계 또한 뿌리 뽑아야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지난달 국정감사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대거 채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진 고용세습 의혹에 대해 여야가 공공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국정조사를 벌이기로 지난 21일 합의했다. 당초 여당은 국정조사에 반대했고, 야당은 국회 일정 보이콧으로 압박했다. 이 바람에 예산심의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는 470조원이 넘는 슈퍼예산을 졸속으로 심사하게 생겼다며 그 책임을 야당에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치공세일 뿐 여당도 내심으로는 예년처럼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책임자로 구성되는 ‘소소위’에서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 짓기를 원하고 있을 터다. 밀실에 가야 ‘쪽지’로 전달되는 의원들의 요구도 반영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쟁점 예산 항목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국회가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 의혹이 제기되자 전국의 대학에서 벌어진 ‘현대판 음서제’ 비판 집회가 말해주듯이 채용비리만큼 취업준비생을 깊은 절망에 빠뜨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비리를 넘어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고용세습은 기회의 평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최악의 불공정 행위다.

기회의 평등이 가장 잘 보장되는 것은 운동경기다. 공통된 일정한 규칙이 있고 장비 규격 등에 대해서도 세밀한 규정이 있다. 동등한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평등한 결과는 재능 또는 노력의 결과로 정당화된다. 하지만 세밀한 규정과 규격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도 결과는 재능이나 노력 못지않게 장비의 질과 같은 제3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포츠는 과학’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아무리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더라도 훈련 방식과 장비의 우열 때문에 성공할 전망 또는 확률은 처음부터 다르다.

우리가 일상에서 벌이는 경쟁은 대부분 운동경기에 비해 규칙이 세밀하지 않고 동등한 도구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성패가 개인 외적인 요소에 더 많이 좌우된다. 따라서 경기와 달리 경쟁의 결과에 선뜻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렵게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경우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게 마련이다.‘교육의 대물림’ ‘아버지의 능력이 나의 스펙’ ‘부의 대물림’ ‘수저론’ 같은 표현에 미뤄보면, 한국에서 기회의 평등과 관련해 가장 흔히 문제되는 것은 가족적 배경과 이것이 교육 및 취업, 나아가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다.

취업이나 교육의 기회는 분명히 열려 있다. 부잣집 출신이든 가난한 집 출신이든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취업의 문도 공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 같은 명목상의 ‘기회의 평등’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기회에 커다란 격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돈 있는 집 애들은 과외도 받고 해서 높은 수능점수를 받는데 나는 못하니 불만이다. 공부 좀 못해도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좋은 대학을 가던데 나는 형편이 되지 않아 요구되는 스펙을 맞출 방법이 없으니 속 터진다. 있는 집 애들은 해외로 영어연수도 다녀오는데 나는 그거 못해 취업 면접 때마다 영어 때문에 떨어지니 참으로 부아가 치민다. 이런 것들이 기회의 평등을 대하는 평균적인 한국인들의 불만이다.

공공기관의 일자리는 흔히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연봉도 대기업 못지않은 데다 직업 안정성은 비교도 되지 않게 높다. 그런 일자리에 편법적인 방법으로 친인척을 채용한다는 것은 기회의 불평등을 넘어 기회의 약탈이다. 단순히 평탄하지 않은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숫제 절벽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했다. 고용세습은 기회도 불평등하고 과정도 불공정하고 결과도 부정의하게 만드는 행위다. 국정조사를 계기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이참에 대기업의 고용승계 또한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단체협약에 명시한 곳도 있고 암묵적으로 그렇게 하는 곳도 있다. 이런 관행이 우리의 많은 젊은이를 절망케 한다.

yjlee@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