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 기꺼이 순교자가 되게 하는 '에로스'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읽기 (29) 사랑

원초적 사랑 '에로스'
신과 인간을 구분하는 매개자…인간을 신적 존재로 만드는 가치
인간을 '자아'라는 섬으로부터 위험한 바다로 이끄는 돛단배

죽음 감수하는 안티고네
돌로 쳐 죽이려 했던 크레온…테베 민심을 살펴 방법 바꿔
가족에 대한 사랑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죽음 선택
석굴에 감금·방치돼 죽어가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1772년 작 ‘아폴로와 아르테미스의 공격으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하는 니오베’.(유화, 120.65㎝×153.67㎝) 미국 댈러스 미술관 소장.
사랑은 없음을 있음으로 만드는 마술이다.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사랑을 통해 존재하게 됐다. ‘무’라는 상태는 사랑의 부재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발생시키기 위한 원초적인 힘이 사랑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 간의 끌림은 절대적이다. 그 끌림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할 정도로 위험하다. 사랑에 빠진 동물은 자신도 몰랐던 이 힘의 포로가 돼 사랑을 위해 기꺼이 순교할 준비가 돼 있다. 사랑은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감정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창의성의 어머니다.

에로스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신통기》(기원전 700년)에서 가장 원초적인 사랑을 ‘에로스’로 표현했다. 에로스는 혼돈(카오스), 땅(가이아), 심연(타르타로스)과 함께 우주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새》(기원전 400년)라는 작품에서 태초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태초에는 혼돈, 밤, 어둠 그리고 심연이 있었다. 땅, 공기 그리고 하늘은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검은 날개를 지닌 밤이 균이 없는 알을 어둠의 무한한 깊음에 낳았고, 이것으로부터 폭풍우의 소용돌이처럼 날쌘 금빛 날개를 가진 우아한 에로스가 탄생했다. 에로스가 깊은 심연에서 자신처럼 날개를 가진 어두운 혼돈과 짝을 이뤄 우리 인종(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빛을 본 첫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 원초적인 에로스를 어떤 대상에 대한 육체적이고 열정적인 감정으로만 알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신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우주 탄생의 원초적인 주역 에로스를 인간 간의 사랑으로 축소시켰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사랑을 그 대상에 따라 다음의 네 종류로 구분했다. ‘에로스(eros)’는 타인을 향한 열정적이고 육체적인 사랑, ‘스토르게(storge)’는 가족 구성원 간의 정신적인 사랑과 관심, ‘필리아(philia)’는 에로스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친구 간의 우정, ‘아가페(agape)’는 신이 인간에게 보여준 욕심 없는 절대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이다.

그리스도교의 에로스는 후대 서양인들과 현대인들의 사랑에 대한 개념에 족쇄를 채웠다. 에로스가 가진 본능적이고 창조적인 위험, 자기희생 그리고 자기초월의 간절함을 제거했다. 경의와 감사를 거세당한 사랑은 현대인들에게 의학적이고 도덕적인 용어이며 공공정책에서 논의되는 안건으로 전락했다. 사랑은 도시라는 문명을 지탱하기 위한 남녀 간의 기계적이고 육체적이며 공적인 활동일 뿐이다. 원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랑이 지닌 신비하고 영적이며 사적인 약동이 사라졌다. 에로스는 C S 루이스의 《나니아연대기》에 등장하는 사자 아슬란처럼, 안전하지도 순하지도 않지만 절대선(對善)이다. 에로스는 인간이 지닌 ‘자아’라는 알량한 섬에서 자신을 탈출시켜 위험한 바다로 항해하게 만드는 돛단배다. 망망한 바다는 위험을 통해 인간을 훈련시키는 거룩한 신비다.향연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한 고대 아테네 장군 알키비아데스처럼, 우리는 에로스가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 소리는 부질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비극작가 아가톤에게 에로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아가톤은 힘찬 목소리로 “에로스는 진실로 존재한다”고 대답한다. 그의 대답은 놀랍다. 왜냐하면 그는 ‘에로스’란 물건을 본 적이 없어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에게 “에로스를 기억을 통해 지켜라”고 충고한다. 에로스는 마치 파수꾼이 성문을 지키듯이 의식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쉽게 떠나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아가톤이 영원히 소유한 어떤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정성을 통해 간직한 ‘위대한 신’ 혹은 ‘위대한 천재성’이다. 에로스는 신과 인간을 구분하는 매개자이자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가치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무엇을 기억하라고 요구한 것인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가? 에로스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어떤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에로스에 대한 예의는 이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는 것이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를 들어 에로스의 본질을 설명한다. 에로스의 어머니는 ‘페니아’, 즉 궁핍(窮乏)이고 그의 아버지는 ‘포로스’, 즉 자원(資源)이다. 사랑의 어머니가 궁핍인 이유는 사랑은 항상 가난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아버지가 자원인 이유는 사랑은 언제라도 생존해 자족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당황하지 않는다. 사랑은 부자도 아니고 당황하지도 않기 때문에 지혜와 무식의 중간에 있다. 사랑은 철학자다.사랑 찬가

하이몬은 자신의 연인이자 사랑이란 거룩한 감정을 일깨워준 안티고네를 공개적으로 돌로 쳐 죽이겠다는 아버지 크레온과 논쟁한다. 크레온은 하이몬을 “한낱 계집에 굴복하는 못난 녀석!”(746행)이라고 나무란다. 하이몬은 크레온이 그의 눈앞에서 안티고네를 죽이려 하자 도망한다. 크레온은 하이몬과 테베 원로원으로 구성된 합창대를 통해 테베의 민심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안티고네의 처형 방법을 수정한다. 안티고네를 산 채로 석굴에 감금해 자연히 죽도록 방치할 것이다.

합창대는 아버지이자 테베의 왕인 크레온과 맞선 하이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려는 안티고네를 위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전쟁에서 정복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랑(에로스)이여! 당신은 재물 위로 내려앉는 자이며 처녀의 부드러운 볼 위에서 밤을 지키는 자입니다. 당신은 바다 위를 배회하는 자이며 야생 들판에서, 인간들의 집에서 헤매는 자입니다. 불멸의 존재들(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당신으로부터 도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알게 되면, 분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781~790행)사랑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은 생산적이면서 동시에 파괴적이다. 합창대는 그런 에로스를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당신은 정의로운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불의로 질질 끌고 가서 결국 파멸시킵니다. 혈육에 분쟁을 일으킨 것도 바로 당신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달콤한 신부의 눈에서 솟아오른, 빛나는 에로스의 소유입니다. 에로스는 위대한 법들과 함께 권좌에 앉아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신적인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가 거부할 수 없는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791~800행)

합창대들도 사랑에 사로잡힌 하이몬과 안티고네의 행위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크레온은 칙령으로 애도를 금지했지만, 이들의 행위는 인간이 정한 법 위에 존재하는 우주생성의 원리를 일깨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이몬이 기다리는 신방으로 가야 할 안티고네가 자신의 의지로 죽음의 공간인 하데스로 내려가는 것을 엄숙하게 지켜보고 있다.

안티고네가 자신의 처지를 공감하는 테베 시민들에게 노래를 부른다. “내 조국의 시민들이여!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가고 있는 나를 보십시오! 모든 생명체를 영원히 쉬게 만드는 하데스가 나를 산 채로 (한 번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케론 강가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신부를 부르는 축혼가나 결혼을 완성하는 나의 답례 노래도 아직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의 신랑은 아케론 강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806~816행) 안티고네는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경계의 강 아케론을 건널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가야 하는 지상의 집으로부터 분리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결혼식에 울려 퍼져야 할 축혼가가 장송곡으로 교체돼 저주와 슬픔만이 가득하다.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니오베를 언급한다. 니오베는 프리기아의 왕 탄탈로스와 테베의 이전 왕이었던 암피온의 아내다. 니오베가 레토 여신의 두 아들인 아폴로와 아르테미스에게 자식들을 자랑하자 이들은 그의 자식들을 죽였다. 니오베는 너무 슬퍼 돌과 같은 눈물을 흘렸고, 이 눈물은 오늘날 터키 서쪽에 있는 프리기아의 시피로스 산맥이 됐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니오베와 비교해 더 불쌍하고 비참하다. 그녀는 자식을 갖는 기쁨도, 결혼의 환희도 경험하지 못했다. 또한 ‘사랑’이 낳은 자식인 양심과 정의 때문에 죽을 운명에 처했다. 안티고네는 절망 속에서 외친다. “아, 나는 조롱당하고 있구나!”(839행)안티고네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 안의 신적인 천재성을 자극하고 발휘하게 하는 에로스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