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온돌' 개발자는 한국인이 아니다

이광훈의 家톡 (16) 세계적 건축물에 들어간 온돌
미국인 건축가 라이트가 온돌파이프 공법을 처음 적용한 도쿄 임페리얼호텔.
어릴 적 시골집에서는 몇 년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방바닥을 모두 들어내고 온돌 구들장을 새로 놓는 대공사가 벌어졌다. 구들장 밑의 묵은 그을음을 긁어내고 새로 놓아야 불기운이 잘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대목장 버금가는 목수였던 아버지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구들장을 놓을 때는 고래(불기운이 지나가는 길)를 잘 놓아야 하는데 식구들 잠자리를 훤히 꿰고 있는 아버지보다 그 길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등을 따습게 데워 줬던 온돌이 초고층 아파트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아마도 한옥 건축 기법 중에서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유산이 온돌문화가 아닐까 싶다. 온수 파이프를 바닥에 까는 간단한 방법으로 옛날의 구들장 공법을 대신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그대로 이어졌다. 서구에서도 온돌 난방의 우수성을 받아들여 바닥 난방을 하는 주택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였을까. 온수 파이프를 방바닥에 까는 방법으로 구들장의 온기를 지금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해준 그 사람은.주인공은 한국 사람이 아니다. 온수 파이프를 바닥에 까는 설비 배관 공법과 보일러 기술의 결합은 한국에서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됐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구들장을 온수 파이프로 변환시킨 아이디어의 원조는 우리가 아니다.

20세기 초 미국 건축계를 주름잡던 세계적인 건축가가 있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 마흔을 넘기면서 불륜에 빠진 그는 고향인 위스콘신에 ‘탈리에신’(영국 웨일스어로 ‘빛나는 이마’를 뜻함)이라는 작업실을 짓고 애인과 함께 정착했다. 그가 유럽에 출장 중이던 어느 날 고용인이 ‘탈리에신’에 불을 지르고 가족을 몰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실의에 빠진 그를 구원해준 것은 일본의 도쿄 호텔 설계였다.’(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중에서)

1914년 당시 일본 거부였던 오쿠라 기하치로가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일본 최고의 호텔 설계를 의뢰했다. 바로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다. 지금도 도쿄의 최고급 호텔로 건재한 도쿄 임페리얼호텔을 설계한 사람이다. 오쿠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과 함께 개항된 부산에 들어와 잡화점을 시작으로 금융, 건설, 압록강 벌목으로 떼돈을 벌어 조선의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긁어갔던 인물이다.오쿠라가 호텔 설계를 맡기기 위해 라이트를 초청한 것은 1914년 겨울이었다. 설계 협의가 원만하게 마무리되고 오쿠라가 대접하는 만찬을 들기 위해 다다미방에 들어선 그는 너무 추운 날씨에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서 음식은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하다 일어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 라이트는 당시 이미 실용화돼 있었던 전기 라디에이터의 파이프를 펴서 바닥에 깔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임페리얼호텔 욕실에 세계 최초로 한국식 온돌시스템을 적용했다. 라이트는 이후 각종 주택과 식물원 등에 바닥 난방을 도입했다.

이광훈 <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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