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아직 중립금리보다 낮다"…내년 추가 인상 시사

기준금리 1년 만에 인상

한은 기준금리 왜 올렸나
1500조 넘은 가계부채, 더 늘어나면 금융 불안 심화
한·미 금리차 더 벌어지면 외국자본 대거 유출 가능성

한은 내부서도 이견
금통위원 2명 '동결' 소수의견
"경기 여건 그나마 나았던 상반기에 올렸어야" 지적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0일 전체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연 1.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올초부터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켰지만 계속 주저하다가 올해 마지막 금통위 회의에서야 단행했다.

하지만 숙고 끝에 나온 결정임에도 시장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고 미국 중앙은행(Fed)도 기준금리 속도 조절 가능성을 내비치는 가운데 ‘경기가 괜찮다’며 금리 인상을 강행해서다. 국내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돈줄을 죄면서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통위의 금리 결정 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두 번 연속 복수의 소수의견이 나온 점은 한은 스스로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자신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모호한 한은, 불신하는 시장

한은이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금융 불안정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지난해 11월 금리를 올렸음에도 가계 대출이 15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증가세가 이어지는 데다 미국 등 선진국이 통화 긴축 기조로 돌아서면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투자자금의 유출 가능성도 커졌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번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총재는 “정부가 거시 건전성 정책을 강화하고 주택안정 대책도 펴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기준금리) 조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금융 불균형을 축소하는 데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내년 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폈다. “내년에 여러 가지 불확실 요인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교역시장이 크게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는 전망이 일반적이고,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보면 2% 중후반대의 성장세는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금리 인상 타이밍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리 인상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던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최근 둔화 움직임이 역력하다. 가파르던 가계 대출 증가세도 주춤하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에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이 불거졌다. 최근 제롬 파월 미국 Fed 의장이 “기준금리가 중립금리 바로 아래에 있다”는 발언을 한 이후 내년 미국 기준금리 인상 횟수가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금융시장도 한은이 밝힌 기조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총재가 경기가 양호하다는 뜻을 시종일관 강조했지만 경기를 반영하는 국내 중장기 채권 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오히려 시장에선 경기 하강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원·달러 환율도 오름세(원화가치 하락)로 돌아섰다.이날 조동철·신인석 위원 등 두 명의 금통위원이 소수의견을 낸 점도 한은으로선 부담이다. 경기 전망에 대한 한은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 10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당시에는 이일형·고승범 위원 등 두 명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소수의견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통화정책에 어려움이 커졌음을 토로했다.

추가 금리 인상, 경기 상황에 달려

이 총재는 내년에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이번 금리 인상에도 여전히 중립금리(경기를 확장 또는 위축시키지 않는 적정 금리)에 못 미치고 있다”며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근접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이 내년 한 차례 정도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경제 상황이 관건이 될 것으로 봤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경제상황을 봐야 한다”며 “2.5%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수렴된다면 금리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석길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내년과 내후년에 한 차례씩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고경봉/서민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