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재산세제 단순화해야 정책효과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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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안정·조세 형평성 제고 목표 이루려면부동산 가격이 출렁일 때마다 각종 대책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시장이 침체되면 부양정책이 등장하고, 반대로 가격이 폭등하면 각종 투기 억제 수단이 동원된다. 세금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재산세는 기본이고 종부세와 양도소득세는 물론 재건축에 따른 초과이익 환수제까지 도입됐다. 양도소득세는 특히 너무 복잡해 감면 여부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나아가 부채상환비율이나 담보대출 한도를 제한해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세제를 단순화해야
주택 보유수 아닌 합산 시가 과세가 합리적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 총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정부 규제를 비웃기나 하듯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것이 사실이다. 강력한 세무조사와 금융규제 등으로 잠시 주춤한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시 부동산 투자가 가장 수익이 높았던 게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금융자산과 달리 별다른 위험 부담도 없어 그냥 사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KB금융경영연구소의 ‘한국 부자 보고서’(2018)에 따르면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가진 부자들의 86%가 투자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주식 등 금융자산보다는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 앞으로도 그 비중을 더 늘리겠다고 한다니, 역시 부동산 투자가 최고의 이재(理財) 수단이라는 것을 잘 대변해준다.부동산 가격 상승은 소유자를 부자로 만들 수는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훨씬 더 큰 부작용을 유발한다. 생산요소의 가격을 높여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지만, 집값 폭등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따라서 집값 안정화는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도 중요한 정책목표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벌써 10여 차례나 수요 억제를 위한 세제와 금융규제가 발표됐지만, 여전히 투기 유혹을 꺾기에는 충분치 못한 것 같다. 오히려 획일적인 규제로 강남과 비(非)강남의 지역 간 격차만 더 벌어지는 왜곡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 많은 대책에도 세금이 투기적 수요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요 정책수단인 양도소득세가 매각할 때만 발생하는 일회성 부담이고, 재산세와 종부세도 여전히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세제가 수시로 변동돼 일관성이 없고, 부과 기준과 감면 여부도 누더기처럼 복잡하며, 언제 또다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 게다가 취득세 등의 부담으로 거래가 활발하지 않고,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각종 규제로 오히려 공급도 원활하지 못하다.
따라서 조세의 형평성을 높이고, 가격 안정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동산 관련 세제를 단순화해야 한다. 우선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고, 주택 수에 관계없이 전체 보유 주택의 합산 시가를 기준으로 과세해야 한다. 여기에 일정 기준을 초과한 경우에만 누진세율을 적용하면 투기적 주택 수요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현행 종부세 부과 기준이 되는 9억원을 표준으로 설정한다면 다주택 소유 여부를 불문하고 총액이 그 이상인 경우에만 누진세를 적용하면 된다. 세금은 하나로 통합되고, 부담은 명확하고 강력해진다.부동산 세제를 단순화하면 저가의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를 방지하고, 과다한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지역 간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똘똘한 한 채가 비싸진다면 당연히 시가에 따른 세금 부담이 높아지고, 반대로 자산가치가 낮은 주택을 다수 갖고 있어도 총액에 과세하므로 지역 간 조세의 공평성이 확보된다. 특히 선진국과는 달리 전국에 단일세율을 부과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보유 주택 수보다 합산 시가로 과세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순한 대책이 정책효과를 높인다고 역설한다. 보유세가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를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세율 인상과 공시지가 현실화도 최소한 10여 년의 장기계획으로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한 해에도 몇 번씩 바뀌는 정책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부동산 세제만이라도 단순하고 일관성 있게 혁신해 투기를 지속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