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조 내년 예산, 결국 '깜깜이·날림심사'

예결위 小소위 '밀실심사' 진행

여야 '220건 감액' 놓고 실랑이
일자리·남북경협기금 예산 '대치'
증액심사는 아직 시작도 못해
원내대표 담판으로 타결 수순

예산안 처리 날짜도 '깜깜이'
오늘 본회의 처리도 물 건너가
6일 또는 7일 통과 가능성
국회가 2년째 국회법 어겨 논란
안상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왼쪽)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 예결위 간사단 등이 지난 1일 국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예산안 추가 심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 위원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김성태 자유한국당·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장제원 한국당 예결위 간사. /연합뉴스
“예산 논의 과정을 전혀 알 수 없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답답하다.”

2일 국회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예산 담당자들이 아침부터 모여들었다.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심사 기한을 넘겨 전날부터 ‘깜깜이 심사’로 전환되자 혹시 모를 ‘호출’에 대비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대기 상태였다. 영남권 한 광역단체 소속의 예산실 관계자는 “증액 감액 논의 과정에서 직접 설명이 필요할지 몰라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전국 지자체 예산담당자의 ‘5분 대기’는 이날도 헛수고에 그쳤다. 여야 3당 예결위 간사 중심의 예산안 ‘소(小)소위원회’는 심사가 보류된 220건의 쟁점 감액 안건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느라 증액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일 예산안 본회의 처리를 압박하고 있지만 심사 속도를 감안할 때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당은 6일 또는 7일 본회의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220건 쟁점 감액 놓고 ‘소소위’서 담판

이날 소소위 회의 시작부터 여야는 신경전을 벌였다.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유류세 인하로 인한 4조원의 세수 결손 대책을 가져오겠다던 기획재정부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회의 진행에 반대했다.바른미래당이 호응하지 않아 회의는 진행됐지만 남북경협기금, 일자리예산 등을 두고 사사건건 부딪혔다. 바른미래당 간사인 이혜훈 의원은 “일부 조정된 부분이 있고 안 된 분야도 있는데 소소위에서 최대한 해보고 타협이 안 되면 원내대표단에서 결정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감액 심사가 마무리되지 못하면서 증액 심사는 진도조차 나가지 못했다. 장 의원은 “증액 심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지역 예산을 챙겨야 하는 여야 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이 예결위 소소위를 ‘패싱’해 직접 기재부 등 정부 부처를 상대로 예산 확보전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의원은 “증액 심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의원들이 직접 부처와 접촉해 증액 희망사항을 전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열린 소소위는 공식 국회 기구가 아니어서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는다. 예산처리 시한을 못 맞춘 것은 물론 ‘깜깜이 날림 심사’가 이어질 수 있다.

3일 예산안 처리도 물 건너가나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들은 예결위 소소위에 2일까지 심사를 마무리해 달라고 주문한 상태다. 하지만 이날까지도 감액 심사가 끝나지 않아 쟁점 현안은 소소위와 별도로 여야 원내대표들이 직접 담판을 짓는 ‘투트랙’ 심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남북경협기금과 일자리예산 등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은 정치적 타결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정치권에선 3일 예산안 처리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회의장과 여야 모두 법정시한을 어기는 부담 때문에 3일을 거론하지만 예산안 논의 속도를 고려할 때 6~7일이 유력시된다. 예결위원장인 안상수 한국당 의원은 “예산 심사는 국회 회기 전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예산국회는 9일 끝난다. 이날이 일요일인 점을 고려하면 7일이 본회의 처리를 위한 시한인 셈이다.

다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2일)을 넘기는 선례를 남기는 점은 여야 모두에 부담이다. 국회 스스로 국회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법의 예산안 처리 기한을 지난해부터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며 “220건의 쟁점 감액 안건이 조율되지 않으면 3일 본회의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