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프레디 머큐리는 정말 공항서 수화물을 날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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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열풍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 속 픽션과 사실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2일 누적 관객 수 6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영국 록밴드 '퀸'의 신드롬이 재현되고 있다.관객들은 보컬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싱어롱' 상영관을 찾는가 하면, 소셜미디어(SNS)에서 '퀸청망청' '퀸뽕' '퀸치광이'와 같은 신조어를 사용하며 여운을 달래고 있다.
팬들은 영화가 퀸 멤버들이나 주변 인물의 모습, 공연 실황을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구현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특히, 1985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프리카 기아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를 재연한 20분 동안 마치 실제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는 평이 많다.퀸이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이것은 실재인가? 이것은 그저 환상인가?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라고 노래했듯, 환상을 실재로 착각할 만큼 과거 공연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담은 덕분이다.
그러나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많은 영화가 그렇듯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극적 구성을 위해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된 게 사실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실제로 공항서 수화물을 날랐나?
- 영화 초반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청년이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기내 수화물을 옮겨싣는 장면이 나온다.이 청년은 자신을 "파키(파키스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라고 부르는 동료에게 "나는 파키스탄 사람이 아니야"라고 항의한다.
이는 실제로 1970년 퀸에 합류하기 전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런던 소재 얼링 예술학교(현 웨스트런던대)를 졸업한 뒤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는 한편, 히스로공항에서 수화물 나르는 일을 했다.히스로공항과 영국항공(BA)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개봉을 앞두고 이러한 사실을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다.
히스로공항 수화물 취급 직원들은 영국항공 터미널에서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퀸의 '아이 원 투 브레이크 프리'(I want to break free)에 맞춰 춤을 추는 동영상을 촬영, 온라인에 게재했다.
[히스로공항과 영국항공이 기획한 '프레디 머큐리' 탄생일 기념 영상]
▲ 프레디 머큐리는 퀸 멤버들을 우연히 만났다?
- 영화 속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훗날 퀸 멤버가 된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를 우연히 만난다.
밴드 '스마일'(Smile)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이 보컬이자 베이시스트인 팀 스태펄로부터 결별 통보를 듣고 망연자실하던 차에 프레디 머큐리가 갑자기 나타나 리드 보컬로 합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머큐리는 얼링 예술학교 동문인 스태펄과 오랜 친구였고, 그를 통해 스마일의 활동은 물론 메이와 테일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스태펄은 지난달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같은 무리에 있었고, 당시 프레디는 종종 스마일 공연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머큐리는 1970년 스태펄이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기 위해 스마일을 떠난 직후, 보컬로 합류한다.
퀸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와 메리 오스틴은 실제로도 평생 친구로 남았나?
- 여성복 매장 직원 메리 오스틴은 영화에서 한때 프레디 머큐리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헤어진 뒤에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뮤즈로 묘사된다.
두 사람의 이러한 관계는 사실이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프레디 머큐리는 1985년 인터뷰에서 "나의 모든 애인은 왜 그들이 메리를 대체할 수 없는지 묻는데, 그건 그냥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메리는 나의 유일한 친구이며 나는 다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재산 절반을 메리 오스틴 앞으로 남겼다.
메리는 이때 프레디 머큐리로부터 상속받은 런던의 저택에 살고 있다.
이곳은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기 전까지 머물던 곳이다.▲ 퀸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 직전 재결합했나?
- 영화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활동으로 해체했던 퀸이 1985년 아프리카 기아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직전 재결합한 것처럼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대중문화지 롤링스톤에 따르면 퀸은 오랜 해외 투어에 지친 나머지 1983년 밴드 활동을 잠시 접고 각자 활동하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멤버들은 이 기간에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았고, 1984년 11집 앨범 '더 웍스(The Works)'를 발표한 데 이어 해외 투어도 재개했다.
영화 속에서 멤버들이 실력이 녹슬었을까봐 걱정한 것과는 달리, 이들은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전 리허설을 충분히 했다.
이 공연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다.1985년 퀸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출처 : 퀸 유튜브 공식 계정]
/연합뉴스
팬들은 영화가 퀸 멤버들이나 주변 인물의 모습, 공연 실황을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구현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특히, 1985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프리카 기아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를 재연한 20분 동안 마치 실제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는 평이 많다.퀸이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이것은 실재인가? 이것은 그저 환상인가?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라고 노래했듯, 환상을 실재로 착각할 만큼 과거 공연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담은 덕분이다.
그러나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많은 영화가 그렇듯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극적 구성을 위해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된 게 사실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실제로 공항서 수화물을 날랐나?
- 영화 초반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청년이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기내 수화물을 옮겨싣는 장면이 나온다.이 청년은 자신을 "파키(파키스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라고 부르는 동료에게 "나는 파키스탄 사람이 아니야"라고 항의한다.
이는 실제로 1970년 퀸에 합류하기 전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런던 소재 얼링 예술학교(현 웨스트런던대)를 졸업한 뒤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는 한편, 히스로공항에서 수화물 나르는 일을 했다.히스로공항과 영국항공(BA)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개봉을 앞두고 이러한 사실을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다.
히스로공항 수화물 취급 직원들은 영국항공 터미널에서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퀸의 '아이 원 투 브레이크 프리'(I want to break free)에 맞춰 춤을 추는 동영상을 촬영, 온라인에 게재했다.
[히스로공항과 영국항공이 기획한 '프레디 머큐리' 탄생일 기념 영상]
▲ 프레디 머큐리는 퀸 멤버들을 우연히 만났다?
- 영화 속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훗날 퀸 멤버가 된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를 우연히 만난다.
밴드 '스마일'(Smile)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이 보컬이자 베이시스트인 팀 스태펄로부터 결별 통보를 듣고 망연자실하던 차에 프레디 머큐리가 갑자기 나타나 리드 보컬로 합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머큐리는 얼링 예술학교 동문인 스태펄과 오랜 친구였고, 그를 통해 스마일의 활동은 물론 메이와 테일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스태펄은 지난달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같은 무리에 있었고, 당시 프레디는 종종 스마일 공연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머큐리는 1970년 스태펄이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기 위해 스마일을 떠난 직후, 보컬로 합류한다.
퀸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와 메리 오스틴은 실제로도 평생 친구로 남았나?
- 여성복 매장 직원 메리 오스틴은 영화에서 한때 프레디 머큐리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헤어진 뒤에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뮤즈로 묘사된다.
두 사람의 이러한 관계는 사실이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프레디 머큐리는 1985년 인터뷰에서 "나의 모든 애인은 왜 그들이 메리를 대체할 수 없는지 묻는데, 그건 그냥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메리는 나의 유일한 친구이며 나는 다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재산 절반을 메리 오스틴 앞으로 남겼다.
메리는 이때 프레디 머큐리로부터 상속받은 런던의 저택에 살고 있다.
이곳은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기 전까지 머물던 곳이다.▲ 퀸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 직전 재결합했나?
- 영화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활동으로 해체했던 퀸이 1985년 아프리카 기아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직전 재결합한 것처럼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대중문화지 롤링스톤에 따르면 퀸은 오랜 해외 투어에 지친 나머지 1983년 밴드 활동을 잠시 접고 각자 활동하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멤버들은 이 기간에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았고, 1984년 11집 앨범 '더 웍스(The Works)'를 발표한 데 이어 해외 투어도 재개했다.
영화 속에서 멤버들이 실력이 녹슬었을까봐 걱정한 것과는 달리, 이들은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전 리허설을 충분히 했다.
이 공연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다.1985년 퀸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출처 : 퀸 유튜브 공식 계정]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