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 안 지나" 강제동원 피해자 추가 소송 가능할까

광주고법, 근로정신대 2차 항소심서 "청구권 소멸시효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이제라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그동안 일본 기업들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로 개인의 배상과 보상 문제도 모두 해결됐다거나 손해배상청구권 시효가 완성돼 권리가 소멸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012년 5월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된 피해자 8명이 낸 손해배상 및 임금 지급 청구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한일청구권 협정에 개인 간의 청구권과 책임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관련 소송들이 급물살을 탔다.
5일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광주고법은 "올해 10월 30일을 기준으로 권리 행사에 대한 사실상 장애 사유가 해소됐다고 본다"며 아직 청구권 소멸시효가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민법상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불법 행위를 알게 된 날로부터 10년 내에 청구해야 한다.

다만 시효 진행을 정지시킬 만한 법률상 장애 사유가 있으면 사유가 해소된 날로부터 각각 3년, 10년 내에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 원고들에게 사실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때도 사유가 해소된 날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판례에 따른 상당한 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최장 3년이다.
이날 항소심 판결을 한 광주고법 민사2부(최인규 부장판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경우 한일청구권 협상을 비롯해 그동안 개인이 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운 사실상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발표나 2012년 대법원판결만으로는 장애 사유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2012년 대법원판결은 원심을 파기 환송한 건이라 권리가 확정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시효를 놓고 논란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지난 10월 30일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청구권 협정에 관한 해석 등을 명확히 한 시점에서야 비로소 장애 사유가 해소됐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장애 사유 해소 시점을 2012년 대법원판결 당시로 본다고 해도 이 재판은 2014년 2월 제기돼 소멸시효는 살아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고법 재판부의 이러한 판단은 향후 추가 소송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부가 파악한 생존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는 187명으로, 신고하지 않거나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명부'를 분석·검증한 결과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학도병·노역 등에 강제동원된 인원은 782만명(중복 동원 포함)으로 추산된다.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피해 신고를 한 국외 동원 피해자만 23만명에 달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