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협상 막 재개됐는데…'화웨이 사태' 대형 악재 돌출

트럼프-시진핑 손 잡은 날 화웨이 창업자 딸 체포 사태
美, 대화 중 대중압박 유지 의지…'ZTE 사태' 재연 우려에 中시장 공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무역전쟁 발발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만나 90일간의 '휴전'에 합의한 지난 1일.
이날 캐나다의 한 공항에서는 한 중국 여성이 미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체포된 이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74)의 딸이자 이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孟晩舟·46) 부회장이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인 화웨이의 '로열패밀리' 일원이 사실상 미국 당국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미중 정상 회동을 계기로 어렵게 재개된 미중 협상에도 먹구름이 낄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멍 부회장은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대(對)이란 제재 위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6일(현지시간) 오전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국에서는 정보기술(IT) 업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ZTE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날 홍콩거래소에서 ZTE 주가가 장중 5% 이상 급락한 것을 비롯해 이날 중국 본토 증시와 홍콩 증시에서는 기술주 폭락 사태가 잇따랐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4월 ZTE가 대북 및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면서 향후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게 하는 제재를 가했다.이후 중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으로 7월 제재가 풀렸지만 ZTE는 미국 정부에 총 14억달러(약 1조5천600억원)의 벌금과 보증금을 내야 했다.

ZTE는 겨우 도산 위기는 모면했지만 큰 타격을 입어 회생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중국을 넘어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는 ZTE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게다가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행정 제재에 그치지 않고 핵심 경영진 신병 확보 시도에 나서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화웨이 사태'의 파장은 'ZTE 사태'의 파장을 압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화웨이가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이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도 일단 강경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주캐나다 중국 대사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멍 부회장의 체포가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비난했다.

중국은 미국과 캐나다 정부에도 외교 채널을 통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하면서 멍 부회장 석방을 촉구했다.

양국이 본격적인 후속 협상에 나서기도 전에 민감한 악재가 돌출하면서 안 그래로 난항이 예상되는 양국 간 협상 지형이 더욱 복잡해졌다.

가뜩이나 대중 무역협상의 미국 측 대표가 기존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에서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교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장에서는 90일의 '휴전' 기간 미중 양국 간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4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나는 '관세맨'(Tariff Man)이다"라고 강조하면서 만약 협상이 결렬된다면 중국에 '관세 폭탄'을 다시 투척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체포는 무역전쟁 해소 단계를 밟아 나가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남 며칠 뒤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양국 간 틈을 벌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이 중국의 거센 반발을 뻔히 예상하고도 멍 부회장의 강제 신병 확보에 나서는 초강수를 둔 배경도 주목된다.

국제사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시한부 협상을 벌이는 것과는 별개로 고강도 대중 압박을 유지할 것이라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미국의 진정한 목적이 자국의 기술 패권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미국이 무역전쟁의 향배와 관계없이 제재 위반, 지식재산권 도용, 기술 도둑질 등 갖가지 명분을 앞세워 중국 기술기업들을 압박하는 '기술 전쟁'을 지속할 것으로 본다.데이비드 츠바이그 홍콩과기대 사회과학 주임교수는 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과 중국이 무역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더 큰 기술 전쟁 속의 단지 소규모 전투에 불과하다"면서 "기술 전쟁은 기술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글로벌 패권국인 미국과 떠오르는 도전자인 중국 간의 기나긴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