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방, 폐치아 등 의료폐기물의 가치에 바이오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의료폐기물을 재활용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어서다. 의료폐기물이란 주사기, 거즈 등 의료기관에서 환자 치료에 쓰인 도구 외에 발치한 치아, 떼어낸 지방 덩어리 등 인체 조직도 포함된다.
발치 치아로 뼈이식재 제작의료기기 업체 한국치아은행은 2008년 의료폐기물인 발치 치아를 가공해 임플란트 시술 시 소실된 잇몸뼈를 재건하는 데 사용 가능한 뼈이식재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의 치아로 만들기 때문에 동물 뼈, 합성재료로 만드는 기존 제품보다 안전성과 효능이 뛰어나다. 치과뿐 아니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 국내 치과 뼈이식재 시장 규모는 약 800억원이다. 이 중 60%를 스위스 가이스트리히, 미국 덴츠플라이 등 해외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우리 제품을 상용화하면 2020년께 600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치아은행은 폐치아를 활용한 뼈이식재를 의료기기로 인증 받고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폐치아가 재활용이 금지된 의료폐기물이기 때문에 의료기기 허가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기술은 '자가치아 유래골 이식술'이란 이름으로 환자 치아로 만든 뼈이식재를 본인에게 이식하는 의료행위로 최근 보험 적용을 받는 데 그쳤다.인체 폐지방 활용 가능성 무궁무진
지방흡입수술 뒤 남은 인체 폐지방도 활용 가치가 큰 의료폐기물이다. 인체 폐지방 1kg에는 콜라겐 600mg을 포함해 세포외기질(세포와 조직 사이의 공간을 채워 세포를 보호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 히알루론산, 지방줄기세포, 엘라스틴 등 조직공학과 재생의료에 쓰일 수 있는 유효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바이오벤처 메디칸은 인체 지방을 생체조직으로 만들어 가슴, 귀, 코 등 모든 신체 조직을 재건하는 이식재 제작 기술을 개발했다. 폐지방을 농축한 뒤 자체 기술로 세포외기질을 분리한다. 이렇게 얻은 세포외기질을 몰드에 넣어 환자 요구에 맞는 형태로 제작해 훼손된 신체 부위를 되살린다. 메디칸은 지난 7월 국내 최대 비만치료 전문병원인 365mc,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과 인체 폐지방에 대한 연구개발 관련 업무협약을 맺었다.지방줄기세포로 퇴행성관절염 치료제를 개발 중인 안트로젠, 세포치료제를 연구 중인 서울대 치대 창업기업 셀인셀즈, 콜라겐과 세포외기질에 3D프린팅을 접목한 티알앤바이오팹과 바이오잉크솔루션 등이 있다.
지금은 인체 폐지방을 연구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관계자는 "현행법상 연구는 괜찮지만 이를 상품화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환경부가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콜라겐의 경우 생체재료, 뼈이식재 등 의료기기에 쓰이는 주요 원료지만 인체 지방을 쓸 수 없어 대부분 동물 유래 콜라겐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연구용 콜라겐이 5mg에 약 6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금 5mg이 200원 정도라는 점에서 매우 비싼 소재"라며 "국내에서 매년 버려지는 인체 지방이 200톤 정도인데 이를 재활용하면 20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폐혈액 사용 허가가 선례될 수 있어
현재 폐기물관리법 13조 2항에 따르면 의료폐기물은 재활용이 금지 또는 제한된다. 업계에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요청으로 2016년 6월 개정된 혈액관리법 시행령 6조는 참고할 만한 선례다. 혈액원에서는 감염, 오염 등으로 환자에게 제공할 수 없는 부적합 혈액을 폐기 처분한다. 그러나 부적합 혈액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방접종약의 원료로 사용하거나 의학 연구, 의약품 개발 및 품질 관리에 쓰일 때다. 법 개정으로 의료기기 연구개발 등에도 폐혈액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당시 의료기기 업계에서는 '의약품은 되는데 의료기기는 왜 안 되느냐'는 불만이 높았다. 특히 혈액으로 병을 신속 진단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체외진단 업계가 법령 개정을 적극 요구했다. 2016년 의료기기 개발 및 품질 관리에도 폐혈액 사용이 허용되면서 체외진단 업체는 연구개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