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베토벤의 인류애, 여자경의 지휘봉에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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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한경필하모닉 송년음악회 '오페라 아리아와 환희의 송가'오케스트라에 합창단까지 모두 247명이 만들어낸 웅장하고 성스러운 화음이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지난 5일 열린 ‘한경필하모닉 송년음악회’의 2부를 장식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은 숭고한 베토벤의 인류애가 여자경의 지휘봉을 따라 형상화된 무대였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175명 합창단과 화합의 울림
유머있고 친절한 해설 곁들여
新星 홍유진의 파가니니 협주
오은경·최승현 이중창도 백미
희망 노래한 ‘합창’의 감동이 곡 4악장은 무겁고 침울한 첼로와 더블베이스 선율로 시작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음을 반복했다. 클라이맥스 선율 역시 첼로와 더블베이스에서 시작해 말년에 악화된 귓병으로 소리가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했던 베토벤을 잘 표현했다.
기악과 4성부 독창, 혼성 합창이 결합된 최초의 교향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악 부분이 끝난 뒤 베이스 김일훈이 “오 벗이여. 더 기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는가”라며 구원의 노래를 불렀다. 이어 소프라노 오은경, 메조소프라노 최승현, 테너 이영화 등 솔리스트와 한경시민합창단원이 장엄한 울림으로 교향곡의 궁극적 의미인 화합과 희망을 노래했다.
이날 한경필하모닉을 이끈 여자경 지휘자는 풍부하고 섬세한 해석 능력으로 기악과 성악, 합창을 균형감 있게 연결해나갔다.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합창단과 한경필을 하나로 묶으며 합창교향곡의 정신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관이 길어야 저음을 내는데, 나는 짧은데도 중저음에 강하다”며 유머있는 해설도 곁들여 객석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귀에 익은 아리아 선율의 향연
1부에선 우리 귀에 익숙하면서도 가슴을 뒤흔드는 협주곡과 오페라 아리아들이 펼쳐졌다. 한국의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홍유진이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 ‘라 캄파넬라(작은 종)’로 포문을 열었다. 파가니니 곡은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해 많이 연주됐지만 바이올린 원곡은 어려운 기교 때문에 쉽게 들을 수 없다.
이날 곡은 ‘24개 카프리스’와 더불어 바이올린 기교의 극치라고 불릴 정도로 난도가 높지만 홍유진은 거침없이 음을 쥐고 흔들었다. 짧게 튕기고 긁으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의 보잉(활놀림)에 관객은 숨죽인 채 눈과 귀를 집중했다. 후반부 바이올린 뒤에서 트라이앵글로 울리는 작은 종소리는 곡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했다.체코 프라하국립극장 오페라 ‘카르멘’에서 활약하며 ‘이보다 더 카르멘다울 수 없다’는 극찬을 받은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은 이번 무대에서도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로 관객을 유혹했다. 그의 풍부한 성량과 연기에 연신 감탄이 터졌다. 연주 도중 그가 한경필 악장에게 다가가 어깨를 쓰다듬으며 유혹하듯 연기하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 9월 나얍(뉴욕인터내셔널오페라프로젝트) 코리아 오디션 당시 좋은 평가를 받은 베이스 김일훈은 큰 키에서 뿜어 나오는 묵직한 중저음으로 로시니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험담은 바람을 타고’를 노래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소프라노 오은경은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방금 그 노랫소리는’으로 관록 넘치는 고음 실력을 뽐냈다. 테너 이영화는 도제니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특유의 미성으로 선사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연 후 여 지휘자는 깜짝 앵콜로 크리스마스 캐럴 메들리를 준비했다. 그는 “송년음악회인 만큼 20일쯤 남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해주고 싶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한경필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아름답게 장식하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등 캐럴 명곡 레퍼토리를 유려하게 이어 연주하며 객석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