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동계에 끌려다니기만 한 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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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병욱 산업부 기자 dodo@hankyung.com광주광역시는 지난달 14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주축이 된 지역 노동계와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해 합의했다며 내용을 공개했다. 합의문은 ‘적정 임금 실현에 매진한다’ 같은 추상적인 표현들로 채워졌다.
이 사업에 각각 1·2대 주주로 참여할 광주시와 현대자동차는 지난 6월 이미 주 44시간 근로와 연봉 3500만원 지급, 단체협약 5년간 유예 같은 투자 조건에 합의한 상태였다. 광주시와 현대차 간 합의 내용에 대해 지역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시가 새 합의문을 들고 현대차와 재협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광주시 공무원들은 “노동계가 통 크게 양보했기 때문에 현대차가 수용할 것”이라고 자신했다.뚜껑을 열어 보니 광주시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기준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이고, 주 44시간 일을 하면 별도 성과급 및 초과근로수당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광주시는 한발 더 나아가 단협 유예 조항은 아예 빼자고 했다. 통 큰 양보는 노동계가 아니라 광주시가 한 게 아니냐는 말들이 현대차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20일 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현대차와 광주시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일 새 협약서를 마련했다. 하지만 상황은 24시간 만에 뒤집혔다. 협상 전권을 광주시에 위임했다던 광주 노동계가 뒤늦게 이 문구에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노동계의 저항에 부딪힌 광주시는 현대차 측에 ‘차량 35만 대 생산 때까지’ 단협 유예를 ‘경영이 안정될 때까지’로 바꾸자고 했다.
현대차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신설법인 노조가 공장 설립 직후부터 “단체협상을 하자”고 나설 수 있어서다. 현대차는 “광주시가 협상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며 약속한 안을 변경시키는 등 혼선을 초래하고 있는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광주시가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깨뜨리는 실험을 하자는 당초 취지를 망각한 채 노동계에 이리저리 끌려다닌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광주시가 현대차와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투자협상’이 아니라 ‘투자압박’을 되풀이한다면 ‘반값 연봉 자동차 공장’은 끝내 시동을 걸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