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위기와 기회' 생각하게 하는 '재난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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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美 시장 붕괴 속 기회 그린 '빅쇼트'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급 투자자들이 있다. 가치 투자로 유명한 워런 버핏이나 ‘헤지펀드의 역사’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등이 그렇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위기의 순간 필요한 인물 목록’을 작성하라고 한다면 그 상위 리스트에 마이클 버리란 이름을 올리고 싶다.
換亂 대응 인간군상 담은 '국가부도의 날'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 퍼스트룩 대표 >
버리는 미국의 헤지펀드 매니저다. 스탠퍼드 의학전문대학원 신경학과 레지던트로 일하며 인터넷에 올린 주식시장 분석이 큰 주목을 받아 본업인 의사를 그만두고 헤지펀드를 설립해 운영한 인물이다. 버리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의 헤지펀드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기에 489%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큰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던 그때 그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붕괴할 것이라는 자신의 분석에 돈을 걸었고, 그 대가로 7억20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그 당시 ‘월스트리트의 미치광이’로 불린 버리의 베팅이 정확한 판단이라고 보고 미국 주택 시장 부도에 돈을 건 몇 명의 월가 매니저 역시 몇백 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다. 2008년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자, 실존 인물인 그들이 어떻게 이 씁쓸한 베팅을 통해 돈을 벌게 되는지를 쫓는 작품이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다.
‘머니볼’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빅쇼트》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배우 브래드 피트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출연할 만큼 애정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그뿐 아니라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등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 역시 개런티를 낮춘 채 참여한 작품으로, 88회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을 만큼 탄탄한 작품적 완성도를 갖춘 수작이다.
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 시스템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빅쇼트는 담백하게, 때론 재기발랄한 형식으로 2008년을 담아낸다. 금융시장을 공부하는 데 이만한 작품이 없다며 보기 시작했는데 문득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재난 스릴러다 싶은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할리우드에 2008년을 조망한 빅쇼트가 있다면, 한국에는 1997년을 주목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이맘때 발발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최고의 경제 호황을 믿어 의심치 않던 때 벌어진 외환위기를 겪는 각기 다른 배경의 인물들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생생한 스토리가 장점이다.
누구보다 먼저 위기를 직감하고 이를 막으려고 애쓰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를 비롯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 뱅상 카셀 등 명배우들이 만들어낸 입체적인 캐릭터와 열연 역시 호평을 받았다. 관객 반응도 뜨거워 역대 11월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의 오프닝 신기록을 세우며 흥행몰이 중이다.
관객들은 왜 20년 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까. 만약 그 이유가 위기는 언제나 반복될 수 있고, 기회란 위기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는 평범한 진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두 편의 영화를 놓치지 말고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