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라디오방송국 투자는 라디오의 부활일까 종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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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락밴드 ‘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유래가 없는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다시 찾아 두 세번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며 소위 ‘떼창’을 할 수 있는 싱어롱(singalong) 상영관이 등장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퀸의 오랜 팬인 저 또한 영화를 한번 더 보기 위해 영화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다보니 처음 볼 때 보다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이 시작되고, 영화의 제목인 ‘보헤미안 랩소디’를 지나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분)는 두 번째 곡 ‘라디오 가가’(Radio Gaga)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You had your time, you had the power
넌 전성기가 있었고, 넌 힘이 있었어
You've yet to have your finest hour하지만 최고의 순간은 아직 겪지 못했어
Radio, Radio.
라디오, 라디오.Radio Gaga - Queen
라디오 가가는 콘서트가 열리기 한 해 전인 1984년 발표된 곡입니다. 퀸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작곡한 이 노래는 텔레비전(TV)에 밀려 몰락하던 라디오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급격히 세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2인조 밴드 버글스(Buggles)가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내놓은 것이 1980년. 이듬해인 1981년 칼라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뮤직비디오 전문 방송국 MTV가 등장하면서 음악 시장에서 라디오의 위상이 급격히 낮아진 것입니다.그런데 노래를 들으며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도 라디오가 위기였구나.’
라디오 산업 위기론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부상한 ‘팟캐스트’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은 라디오 산업의 입지를 보다 더 좁히고 있습니다.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가 나온지 약 40년이 지났음에도 라디오는 굳건히 생존했지만 기술 혁신과 함께 위기가 다른 색채를 띄고 나타난 것입니다.
지난 11월 파이낸셜타임즈(FT)가 보도한 애플의 미국 라디오 방송국 그룹 아이허트미디어(iHeartMedia) 투자 검토 소식은 라디오 산업의 미래에 대한 생각 거리를 던져줍니다. 아이허트미디어는 미국 전역에서 850여개의 방송국을 운영하는 미국 최대의 라디오 방송사입니다. 매달 2억 7000만명의 미국인이 이 회사의 방송을 듣고 라디오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 사용자만 1억 2000만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이허트미디어는 올해 3월 미국 휴스턴에서 한국의 회생절차(법정관리)격인 연방파산법 제11조에 의한 파산보호(챕터11)을 신청했습니다. 200억 달러(약 22조원)에 달하는 부채와 매년 14억 달러(약 1조 6000억원)씩 쌓여가는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 등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라디오 방송국의 이윤을 뺐어갔다”고 지적합니다.
왜 애플은 몰락해가는 전통의 미디어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일까요. FT에 따르면 애플의 속내는 애플뮤직 가입자 유치에 있습니다. 12월 기준 애플 뮤직의 가입자 수는 5600만명으로 음악 스트리밍 업계 1위 스포티파이(8000만명)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애플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이에 애플은 아이허트미디어 투자를 통해 2억 7000만명에 달하는 잠재적 고객군을 자연스럽게 확보하고, 음악 스트리밍 시장 선두주자로 나서려 한다는 것이 FT의 분석입니다. 기사에서 마크 멀리건 미디아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라디오 청취자들은 필연적으로 온라인 서비스로 넘어갈 것이고, 그들은 애플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애플뮤직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한 애플의 집념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애플은 최근 아마존의 인공지능(AI)스피커 ‘에코’에 애플뮤직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AI스피커 시장에서 에코와 AI시스템 ‘알렉사’가 애플의 제품 ‘홈팟’ 그리고 ‘시리’의 최대 경쟁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행보입니다.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AI스피커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를 감수하더라도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애플의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집 안의 FM라디오는 AI스피커로 바뀌고 있습니다. TV의 시대 라디오가 살아남은 덴 영상이 끼어들 수 없는 영역인 자동차 운전의 역할이 컸지만 요즘의 운전자들은 부산하게 주파수를 돌리기보단 본인이 원하는 방송, 음악을 광고 없이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찾고 있습니다. 애플이 아이허트미디어 투자를 검토한다는 소식은 라디오 부활의 전주곡일까요 아니면 예고된 종말의 상징일까요.여담으로 퀸은 라디오 가가를 발표하면서 뮤직비디오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잘 만든 뮤직비디오가 앨범의 흥행을 좌우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멤버들의 개별 솔로 활동으로 한동안 침체돼있던 퀸을 다시 정상으로 끌어올린 곡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뮤직비디오가 큰 몫을 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많은 소위 ‘라디오스타’들이 팟캐스트에 혹은 ‘TV스타’들이 유튜브 방송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끝)
황정환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jung@hankyung.com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이 시작되고, 영화의 제목인 ‘보헤미안 랩소디’를 지나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분)는 두 번째 곡 ‘라디오 가가’(Radio Gaga)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You had your time, you had the power
넌 전성기가 있었고, 넌 힘이 있었어
You've yet to have your finest hour하지만 최고의 순간은 아직 겪지 못했어
Radio, Radio.
라디오, 라디오.Radio Gaga - Queen
라디오 가가는 콘서트가 열리기 한 해 전인 1984년 발표된 곡입니다. 퀸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작곡한 이 노래는 텔레비전(TV)에 밀려 몰락하던 라디오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급격히 세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2인조 밴드 버글스(Buggles)가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내놓은 것이 1980년. 이듬해인 1981년 칼라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뮤직비디오 전문 방송국 MTV가 등장하면서 음악 시장에서 라디오의 위상이 급격히 낮아진 것입니다.그런데 노래를 들으며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도 라디오가 위기였구나.’
라디오 산업 위기론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부상한 ‘팟캐스트’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은 라디오 산업의 입지를 보다 더 좁히고 있습니다.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가 나온지 약 40년이 지났음에도 라디오는 굳건히 생존했지만 기술 혁신과 함께 위기가 다른 색채를 띄고 나타난 것입니다.
지난 11월 파이낸셜타임즈(FT)가 보도한 애플의 미국 라디오 방송국 그룹 아이허트미디어(iHeartMedia) 투자 검토 소식은 라디오 산업의 미래에 대한 생각 거리를 던져줍니다. 아이허트미디어는 미국 전역에서 850여개의 방송국을 운영하는 미국 최대의 라디오 방송사입니다. 매달 2억 7000만명의 미국인이 이 회사의 방송을 듣고 라디오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 사용자만 1억 2000만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이허트미디어는 올해 3월 미국 휴스턴에서 한국의 회생절차(법정관리)격인 연방파산법 제11조에 의한 파산보호(챕터11)을 신청했습니다. 200억 달러(약 22조원)에 달하는 부채와 매년 14억 달러(약 1조 6000억원)씩 쌓여가는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 등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라디오 방송국의 이윤을 뺐어갔다”고 지적합니다.
왜 애플은 몰락해가는 전통의 미디어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일까요. FT에 따르면 애플의 속내는 애플뮤직 가입자 유치에 있습니다. 12월 기준 애플 뮤직의 가입자 수는 5600만명으로 음악 스트리밍 업계 1위 스포티파이(8000만명)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애플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이에 애플은 아이허트미디어 투자를 통해 2억 7000만명에 달하는 잠재적 고객군을 자연스럽게 확보하고, 음악 스트리밍 시장 선두주자로 나서려 한다는 것이 FT의 분석입니다. 기사에서 마크 멀리건 미디아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라디오 청취자들은 필연적으로 온라인 서비스로 넘어갈 것이고, 그들은 애플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애플뮤직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한 애플의 집념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애플은 최근 아마존의 인공지능(AI)스피커 ‘에코’에 애플뮤직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AI스피커 시장에서 에코와 AI시스템 ‘알렉사’가 애플의 제품 ‘홈팟’ 그리고 ‘시리’의 최대 경쟁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행보입니다.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AI스피커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를 감수하더라도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애플의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집 안의 FM라디오는 AI스피커로 바뀌고 있습니다. TV의 시대 라디오가 살아남은 덴 영상이 끼어들 수 없는 영역인 자동차 운전의 역할이 컸지만 요즘의 운전자들은 부산하게 주파수를 돌리기보단 본인이 원하는 방송, 음악을 광고 없이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찾고 있습니다. 애플이 아이허트미디어 투자를 검토한다는 소식은 라디오 부활의 전주곡일까요 아니면 예고된 종말의 상징일까요.여담으로 퀸은 라디오 가가를 발표하면서 뮤직비디오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잘 만든 뮤직비디오가 앨범의 흥행을 좌우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멤버들의 개별 솔로 활동으로 한동안 침체돼있던 퀸을 다시 정상으로 끌어올린 곡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뮤직비디오가 큰 몫을 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많은 소위 ‘라디오스타’들이 팟캐스트에 혹은 ‘TV스타’들이 유튜브 방송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끝)
황정환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