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조끼'에 포위된 마크롱…통치스타일·직설화법 위기 자초

대통령 권위 강조하며 영웅주의 내세워…'新 보나파르트 주의' 비판도
실직청년과 노인에 "불평불만 그만"…훈계조의 특유 직설화법 도마
주변에 정치 조언 구할 만한 중량급 인사 없어…고립 심화
프랑스에서 유류세 인하 요구로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가 전방위로 확산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0)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노란 조끼 시위대가 정부의 유류세 인상 철회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8일 대규모 집회를 벌이기로 하는 등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벌어진 다양한 시위 현장에서 '마크롱 퇴진' 구호가 등장한 지는 꽤 오래전 일이다.

시민들은 유류세 인하, 부유세 부활, 연금개혁 저지, 대입제도 개편,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요구를 내걸고 임기 갓 1년 반이 된 젊은 대통령을 최대 위기로 내몰고 있다.마크롱의 국정 지지율은 작년 5월 취임 직후 50% 후반∼60% 초반대에서 최근 노란 조끼 국면 한복판에서 이뤄진 조사(칸타소프르-원포인트)에서 21%로 나타나, 20%대에 겨우 턱걸이를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마크롱의 지지율이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얘기가 몇달 전부터 나왔다.

'노란 조끼' 시위가 급속확산한 배경에는 프랑스의 소수 기득권 엘리트계층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불평등 심화 등 다양한 사회모순의 중첩이 있지만, 마크롱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분석이다.
◇취임 석 달 만에 '권위적 리더십' 비판 일자 "영웅주의 필요" 반박
마크롱은 국제무대에서 프랑스의 위상과 영향력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반대로, 국내에서는 "지나치게 권위적이다", "부자들만 대변한다", "의회를 건너뛰고 대통령의 권위를 내세우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등의 비판 속에 끊임없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다.

무엇보다 마크롱의 가장 큰 문제로 흔히 지적되는 것은 권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방주의적 통치 스타일이다.

마크롱은 취임한 지 갓 한 달이 지난 작년 7월 초 상·하원 전체의원들을 소집해 합동 연설을 통해 정치개혁과 개헌 구상을 천명한 적이 있다.프랑스 대통령이 양원 합동 연설을 하는 것은 국가적 비상상황이 아니고서는 거의 없는 일로 매우 이례적이었다.

상·하원 의사당이 있는 파리 시내에서 꽤 떨어진 절대왕정기의 궁전(베르사유궁)에 모인 1천여 명의 양원 의원들은 대통령으로부터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는 '수모'를 톡톡히 겪어야 했다.

국방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직언한 프랑스군 합참의장을 경질하는 과정에서도 마크롱이 지나치게 권위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는 취임 갓 석 달이 지난 작년 8월 주간지 르 푸앵과 인터뷰에서 통치 스타일이 권위적이라는 비판에 대한 의견을 묻자 "영웅주의가 필요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치적 영웅주의를 통한 열망의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영웅을 꿈꾸는 마크롱에게는 로마의 최고신 '주피터'(그리스신화의 제우스에 해당)라는 별명도 붙었다.

마크롱을 나폴레옹에 비유해 비판하는 시각도 드물지 않다.

프랑스의 정치컨설턴트 스테판 로제는 "대통령이 국민과 정치의 매개체인 의회의 역할을 해치면서까지 엘리제궁에 권력을 집중시켰다.

마크롱주의는 신(新)보나파르트주의"라고 비판했다.

보나파르트주의는 나폴레옹식의 독재정치를 말한다.
◇의지했던 최연장자 장관도 떠나고…신경질적 화법으로 비난 자초도
마크롱은 올여름엔 대선캠프 경호원 출신 수행비서가 지난 5월 노동절에 경찰관 행세를 하며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사건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는 와중에 주요 각료들이 대통령과의 불화 끝에 줄줄이 사퇴하면서 더 고립됐다.

각료 중 대중적 호감도가 가장 높았던 니콜라 윌로 환경 장관이 원전감축 연기를 놓고 내각에서 갈등 끝에 사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료 중 최연장자 제라르 콜롱(71) 내무장관도 리옹 시장에 재도전하겠다면서 사퇴해버렸다.

내각에서 정치경륜이 가장 풍부했던 콜롱은 기업인과 시민단체 출신으로 채워진 마크롱 정부에서 대통령에게 국정 전반에 관한 조언을 하던 정치적 '멘토'였다.

콜롱의 자진사퇴 후에는 마크롱의 주변에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만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여론의 밑바닥 정서를 헤아리지 않는 듯한 마크롱의 직설화법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단점으로 꼽힌다.

마크롱은 지난 8월 덴마크를 방문해 덴마크인들을 "새로운 생각에 열려있는 루터교도"라 추켜세우고 자국민들을 "변화에 저항하는 골(Gaulle)족"이라 깎아내렸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연금개혁 등 노동·사회정책의 변화에 대한 국내 반발을 겨냥한 발언이었는데,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지난 9월엔 일자리가 없다고 푸념하는 실직 청년에게 일할 사람이 없어 난리라며 "저 건너편 레스토랑에 가보라"고 일갈해 구설에 올랐고, 그 다음 달에는 연금이 너무 적어졌다고 하소연한 노인에게 "불평불만은 그만해야 한다"고 쏘아붙이는 모습이 방송을 타고 전국에 중계됐다.

훈계조의 직설화법이 지지율 하락을 자초한다는 비판에도 그는 최근까지도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10월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섬을 방문했을 때 한 기자가 그의 화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거론하자 "가끔 내 의도가 곡해돼 유감이지만 발언 자체를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 조끼 1차집회 앞서 태도변화 약속했지만…"마크롱 제1의 적은 마크롱"
그러나 국정 지지율이 계속 곤두박질치고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대규모 노란 조끼 집회까지 예정되자 결국 마크롱은 고개를 숙였다.

1차 노란 조끼 집회를 며칠 앞두고 마크롱은 지난달 14일 TF1 방송 인터뷰에서 "국민께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정책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는 규모를 계속 키워가면서 일부 과격세력의 폭력시위까지 겹쳤다.

일련의 시위들은 1968년의 학생·노동자 대투쟁인 이른바 '68 혁명' 이후 가장 격렬한 시위로 평가된다.

마크롱 대통령의 제1의 적은 바로 본인이라는 얘기도 있다.

유력지 르 몽드는 10월 한 분석기사에서 "의회의 여당이 과반인 데다 분열된 야권이 무력한 상황에서 마크롱의 제1의 적은 마크롱이다.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대통령이 변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다가는 '국가개조' 프로젝트는 공허한 울림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암울한 전망은 한 달 뒤 들불처럼 번진 '노란 조끼' 집회 국면으로 결국 현실화하고 말았다.

마크롱의 대국민 사과와 태도 변화 약속은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노란 조끼 대규모 4차 집회가 끝나고 내주 초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기로 한 마크롱이 어떤 응답을 내놓을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