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맛보고, 양념·수프 섞고…三味 나고야식 장어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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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일본은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형태의 열도다. 한반도 남쪽 규슈지방에서 시작해서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이 있다. 이어서 도쿄로 넘어가기 전에 있는 곳이 주부(中部) 지방이고, 이곳 남쪽 네 개 현을 따로 도카이 지방이라고 부른다. 기후현 미에현 시즈오카현 아이치현이 속해 있다. 아이치현의 나고야를 제외하면 한국인 발길이 잦지는 않은 땅이다. 조용하지만 활력 넘치는 이 지역을 다녀왔다.
탱글탱글~씹을수록 달콤…珍味 이세 새우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 음식 이야기 - 일본 도카이 지역
세 가지 방식으로 즐기는 나고야식 장어덮밥나고야에서 가까운 주부공항에 내려 도자기마을을 먼저 들렀다. 아이치현 도코나메야키시(市)에 있는 도코나메야키 마을이다. 헤이안시대(12세기)부터 만들어왔으니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6개 도자기마을 중 하나다. 사람들이 생활하고 도자기를 굽는 마을이라 생동감이 살아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옛 도자기 가마를 구경하고, 도자기를 직접 구워보거나 살 수도 있다. 마을을 도는 산책길 A코스는 1시간 정도, B코스는 2시간 반이 걸린다. 이 도자기마을의 주생산품은 차주전자와 마네키네코다. 구매할 수 있는 공방도 여럿 있다. 마네키네코는 흔히 가게에 많이 있는, 고객을 부른다는 고양이를 말한다. 마을 입구에 39명의 도자기 작가가 만든 고양이를 테마로 각종 복과 운을 준다는 흥미로운 연작 작품이 전시돼 있다. 길에 작품을 부착한 형태여서 걸어가며 감상할 수 있다. 작품 수준이 높아서 깜짝 놀랐다. 도자기마을 앞에 도코나메역이 있다. 공항에서 메이테쓰 전차를 이용하면 한 정거장이다.나고야시로 넘어가니 배가 고팠다. 이 도시의 최고 명물 음식 중 하나가 히쓰마부시다. 나고야식 장어덮밥이다. 이 음식이 유래된 호라이켄(houraiken.com)에서 식사했다. 메이지 6년(1873년) 창업한 노포이기도 하다. 창업 당시 장어와 닭고기 배달이 많았는데, 배달하던 나무 그릇이 자주 깨져서, 깨지지 않는 그릇을 고안한 것이 지금의 히쓰(櫃)라는 원형의 나무 그릇이다. 히쓰와 마부스(まぶす·섞다)를 합성한 히쓰마부시 요리가 탄생한 것이다. 예약이 안 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장어덮밥은 장어덮밥인데 먹는 법이 좀 특이하다. 처음엔 그냥 맛을 보고, 와사비와 파 등의 양념을 섞어서 먹고, 그 다음에 함께 내주는 수프를 섞어서 오차즈케를 만들어 먹는다. 한 그릇의 음식을 세 가지 방식으로 즐기는 셈이다. 도쿄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보다 양이 푸짐하고 가격도 20% 정도 싼 편(3000엔대). 아주 훌륭한 맛이다.
나고야는 간토 지방의 초입이다. 오사와 도쿄의 중간으로 교통의 요지다. 옛날 에도시대에 서부지역 번들이 참근교대(지역 번 유력자들이 일정 기간 에도에 머무르도록 한 제도. 반란을 막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를 하러 이동할 때 엄청나게 긴 행렬이 반드시 나고야를 지나야 했다. 이 밖에도 간사이에서 생산된 각종 장류와 술 등 중요한 물산이 나고야를 거쳐 들어갔다. 나고야가 크게 번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고야는 실질 숭상의 도시다. 일꾼이 많고 사무라이도 많았다. 음식 문화도 실용적으로 발달했다. 나고야의 명물 음식 중에 니코미우동이 있다. 된장을 풀어 넣고 진하게 끓인 우동인데, 특이하게도 제물국수다. 일본의 우동과 소바는 삶은 걸 건져서 ‘다시’에 말아낸다. 니코미우동은 육수에 면과 재료, 된장을 넣고 그대로 끓여낸다. 칼로리가 높고 맛도 아주 진하다.나고야의 명물 닭날개 튀김 데바사키
나고야에서 꼭 먹어보는 음식 중에 데바사키가 있다. 많은 직장인이 전문점에 모여 닭날개를 뜯는다. 가볍게 파우더를 묻혀 튀겨내는 닭날개인데, 후추와 소금을 듬뿍 쳐서 나고야다운 진한 맛을 낸다. 나고야에서 시작해 전국에 지점까지 갖춘 ‘세카이노야마짱’ ‘후라이보’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나고야 사람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메뉴다. 1인당 수십 개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운다. 후라이보가 원조이고, 세카이노야마짱은 후발주자인데 지금은 더 유명해졌다. 1985년 창립됐다. 간판에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는 야마모토 시게오 초대 사장은 자위대 취사병 출신으로 1억엔을 모으기 위해 포장마차를 했다. 나고야에서 성업 중이던 이자카야 후라이보에서 인기 있던 데바사키 요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간단하게 흉내내기 시작했다. 전국 69개 점포, 해외에 일곱 곳, 연매출 78억엔의 나고야 명물로 자리잡았다. 이 집의 모든 요리가 흉내낸 것으로 오리지널을 베껴온 것을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흉내내는 것도 실력이라는…. 그래서 후라이보 사장도 미워하지 않았다고 한 일화가 있다. 시내에 점포가 워낙 많으니 쉽게 찾을 수 있다.나고야 음식 문화 중에서 특이한 건 모닝커피다. 아침에 동네 커피숍에 가면 달걀 요리에다 마가린이나 딸기잼과 팥을 빵에 발라서 판다. 값도 싸다. 보통 350엔 정도. 아이치현 사람들은 이 메뉴를 아주 좋아해서 오전에 길에 사람이 없으면 커피숍에 다 있다는 농담도 있다. 이 모닝세트를 처음 시작한 고메다커피숍에 들렀다. 이 세트는 오전 11시까지만 운영한다. 450엔에 앞서 말한 빵 세트를 준다. 11시 이후에는 커피값만 450엔. 역시 나고야 시내에 본점, 분점이 아주 많다. 보통 오전 7시나 7시30분에 문을 연다. 나고야에 묵는다면 호텔 조식 대신 꼭 들러볼 것.
이세의 명물 이세새우 단연 인기나고야 관광루트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세신궁(伊勢神宮)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등재돼 있기도 하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건축물이라는 뜻이다. 미에현 이세시에 있는데, 시 전체가 이 신궁의 가치로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궁 면적이 시의 5분의 1이나 된다. 매년 전국에서 6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온다. 일본인에게는 종교적 개념으로, 또는 관광으로 반드시 가야 할 곳으로 꼽힌다. 이세신궁은 외궁 내궁을 포함해 모두 125개의 별궁과 말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화려한 외궁을 많이 보게 된다.이세에는 굴과 복어 등 해산물이 풍부한데 무엇보다 이세새우가 단연 인기다. 바닷가재 같기도 하고 새우 같기도 한 이것은 금닭새우라고 불리고 바닷가재보다 훨씬 비싸다. 시내 유명 요리점에서 회와 구이로 먹어봤다. 달고 진하다. 비싼 값을 치를 만한데, 산지이다 보니 대도시에서보다 훨씬 좋은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시내에 이세새우를 다루는 집이 많다.
나고야에서 다카야마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는 ‘다루마야’(gujoayu.com)라는 은어 전문 식당이 있다. 나가라가와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에 사는 은어로 요리한 코스를 맛볼 수 있다. 튀기고, 굽고, 솥밥도 내온다. 코스로 짤 수도 있고 단품을 시켜도 된다. 1928년 창업해 대를 잇고 있다. 맛이 좋은 편이다. 다카야마 후루이마치나미는 한국인도 꽤 많이 가는 역사지구다. 기후현 다카야마시에 속한다. 국가 지정 중요 전통 건축물군 보존지구다. 사전 정보가 없으면 깜짝 놀라게 된다. 여기 교토 아니야? 그래서 작은 교토라고도 불린다. 교토와 다른 것은 실제로 생활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 옛 일본 시타마치(상업지구)의 원형을 잘 살려서 보존하고 있어 근대 이전의 일본 마을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에서 건너와 정착한 라멘, 주카소바
볼거리, 살거리가 넘치지만 아무래도 먹거리에 눈이 모인다. 이 지역 특산인 소고기를 이용한 스시다. ‘스시+지역 특산’의 조합이다. 깊숙한 내륙지방이라 원래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에도마에식의 니기리 스시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관광객이 스시를 일본 음식의 첫째로 꼽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감점 요인. 이런 약점을 오히려 지역 산물과 결합시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한 곳에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많은 집에서 와규스시를 하고 있다.
다카야마에는 히타다카야마 지역이 있다. 평평한 대지에 옛 도시계획이 소박하게 구획돼 있다. 이곳 명물이 또 있다. 주카소바, 라멘이다. 이들은 라멘이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주카소바라고 한다. 1930년대 중국에서 국수 요리가 건너와 일본에 정착한 초기 음식을 주카소바라고 불렀다. 소금으로 맛을 내고 맑은 닭뼈 국물에 가늘고 꼬불꼬불한 면, 얇은 차슈(돼지고기 조림)를 얹는 것이 전통 레시피다. 라멘도 격변의 세월을 거치면서 엄청난 변화를 이뤘다. 더 농후해지고, 고기도 두껍고 양이 많아졌다. 이에 비하면 히타다카야마는 전통적 주카소바의 맛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지역 주카소바 리스트를 나눠주는데 무려 20곳이다. 어느 곳을 가든 훌륭한 맛을 보여준다. 간결하고 시원하다. 고명과 국물(소금이냐 간장이냐)이 조금씩 다르고, 개성이 있다. 시간과 위치에 맞춰 먹어보면 되겠다. 다카야마 아침시장도 인기 있는 스폿이다. 미야가와강 옆으로 이어진 미야가와 아침시장이 3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 특산물, 공예품을 판매한다. 주로 오전 7시부터 낮 12시까지 매일 열리며, 겨울철에는 오전 8시부터 열린다.
붉은 색 핫초 된장 구수하고 감칠맛 넘쳐
한·중·일 3국이 공통으로 즐기는 양념은 된장 간장이다. 아이치현 오카사키시에는 일본 최고 된장인 핫초된장 공장이 있다. 가큐슈(www.kakukyu.jp)라는 회사다. 박물관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옛날 생산설비와 된장 숙성 나무통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이곳이 현재 사용하는 공장이다. 옛날 제조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뜻. 이 회사는 1645년 창업했다. 중국에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가 귀국한 해다. 참으로 오래된 공장이 아닐 수 없다. 재료라고는 콩과 소금이 전부다. 콩을 쪄서 효모가 붙게 한 후 큰 나무통에 넣고 돌로 눌러서 수분을 조절하면서 숙성한다. 그걸 2동2하 숙성이라고 부르는데, 두 번의 겨울과 두 번의 여름을 나야 한다. 이들이 쓰는 나무통은 높이가 2m이고 용량은 6t이다. 특이한 건 위에 누름돌로 탑처럼 쌓은 것이다. 금세라도 무너질 듯하다.“저 돌을 원추형을 쌓는 기술을 익히는 데만 5년 이상 수련해야 합니다. 지진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게 특징입니다.”
나무통을 만드는 사람도 이제는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돌을 쌓는 이들도 대를 잇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역사적 된장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핫초(8丁)란 별 의미는 없다. 이 된장공장이 오카사키 시내에서 8정(거리단위)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붙었다. 핫초된장은 붉은 색이다. 엄밀히 말해 짜장색과 비슷하다. 끓이면 갈색을 띠며, 아주 구수하고 감칠맛이 넘친다. 고가로 팔리는 된장이다.마지막 여정이 이어진다. 하마마쓰시다. 우리에게는 좀 생소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하!’ 할 것 같다. 도쿄 옆 시즈오카현에 속하며 야마하, 가와이, 롤랜드 등의 피아노 공장이 있다고.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이곳 콩쿠르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이 지역 명물 음식을 놓칠 수 없다. 바로 교자다. 교자는 일본 전역이 먹지만, 도시 전체가 교자를 테마로 하는 곳은 하마마쓰와 도쿄 인근의 우쓰노미야 정도. 교자노 이시마쓰(ishimatsu-gyoza.co.jp)라는 가게로 발길을 향했다. 만두를 둥글게 돌려 구워서 낸다. 피가 얇아서 보통 교자보다 1.5배는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교자는 일본에 살던 중국인들에 의해 퍼져 나갔다. 이 집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새로운 일본을 건설할 시기인 1953년에 창업했다. 포장마차처럼 작은 가게에서 시작, 지금은 3대 사장까지 이어지면서 하마마쓰 최고 교자 회사가 됐다. 하마마쓰시의 교자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면 교자학회가 정식으로 있고 시내에 교자 파는 가게만 300개가 넘는다. 교자 전문점은 학회에서 인정한 숫자로 80곳이다. 시원한 생맥주를 곁들이니 교자가 입에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