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서울엔지니어링 대표, 용광로 숨길 '풍구' 국산화…美 등 35개국 수출
입력
수정
지면A19
'제114회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 이원석 서울엔지니어링 대표제철소 용광로의 철이 녹으려면 뜨거운 바람이 필요하다. 숯불을 피울 때 부채질을 해야 화력이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게 ‘풍구(風口·tuyere nozzle)’다. 용광로에 1000도 이상의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장치다. 풍구가 없으면 철광석을 녹일 수 없다. 국내 양대 제철소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용광로에 부착된 풍구를 100% 납품하는 곳이 있다. 서울엔지니어링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35개국에 수출하며 세계 풍구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1974년 서울엔지니어링에 사원으로 입사해 45년간 풍구 개발과 수출에 힘쓴 이원석 대표는 지난 7일 한국무역협회가 선정한 제114회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을 수상했다.
부도 딛고 23년간 국산화 매진
품질 하나로 해외서 인정받아
포스코·현대제철에 독점 공급
"현장에 답있다" 경영 철칙
임원 5명 중 4명이 고졸 출신
풍구 첫 국산화 성공서울엔지니어링은 풍구를 처음으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업체다. 1974년부터 국산화 작업에 착수했다. 개발에 들인 시간은 자그마치 23년. 1997년에 이르러서야 포스코의 10개 용광로에 쓰이는 모든 풍구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었다. 개발 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회사가 어려워져 1984년 부도가 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풍구 국산화가 이뤄지면서 포스코는 수입 가격의 50% 수준에서 납품받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품질 검사를 위해선 용광로에 풍구를 장착해 최소 1년간 사용해봐야 하기 때문에 개발기간이 길었다”고 설명했다.
해외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다. 이 대표는 “초기엔 US스틸 같은 곳을 무작정 찾아갔지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포스코 100% 납품업체’라는 증서가 큰 도움이 됐다. 항상 ‘마패’처럼 지니고 다녔다. 이 대표는 “품질을 조금씩 인정받으면서 세계 87개사에 수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품질에 목숨 걸었다”
서울엔지니어링의 지난해 매출 701억원 중 60%가 해외 매출이다. 수출 비중을 늘린 비결로 이 대표는 ‘품질’을 꼽았다. 풍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형, 용해, 가공 등 8가지 공정을 거칠 때 서울엔지니어링은 약 50가지 품질 검사를 함께 진행한다. 그는 “공정마다 해당 작업자가 품질 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해야 다음 공정으로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에게는 품질 관리를 위한 또 하나의 철칙이 있다. “제품을 직접 만드는 공장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공장 직원들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 회사는 승진 등에서 학벌을 따지지 않고 생산직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 대표를 포함해 임원 5명 중 4명이 고졸 출신이다. 그는 “보고서 작성법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을 잘 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회사의 모든 일정도 공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점심 식사도 공장 직원이 사무직보다 먼저 먹는다. 이 대표는 “‘남는 반찬을 먹는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장 직원들이 야근을 하면 사무직 직원들도 퇴근하지 않고 기다린다. 휴가도 같은 기간에 간다.
서울엔지니어링은 현재 20% 수준인 세계 시장점유율을 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대표는 “금융회사 차입금을 모두 상환하는 무차입 경영을 달성하는 시점에 회사를 상장해 그간 고생한 모든 임직원에게 고르게 혜택이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