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추경 45兆에 '쓰고 남은 돈' 44兆…'집행률 0%' 사업 수두룩

주먹구구 지자체 예산
(1) 추경 중독에 빠진 지자체

시흥시·강남구·무안군 등 30곳
예산대비 잉여금 비율 20% 넘어

추경 남발해 예산 불려놨지만 필요한 사업엔 자금 집행 안해
작년 국고보조금도 14% 미사용
#1. 경기 시흥시의 지난해 결산서에는 ‘쓰고 남은 돈(순세계잉여금)’이 9066억원에 이른다. 시흥시 한 해 예산의 47%에 달하는 액수다. 미래형 도시인 ‘스마트시티’ 건설 등 일부 사업이 예정대로 집행되지 않은 탓이다.

#2. 과천시는 지난해 전체 예산의 27%에 달하는 786억원을 예비비로 편성했다가 결국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자연재해 등 예측이 불가능한 지출에 대비해 용도를 정하지 않는 예비비를 과도하게 잡는 바람에 과천시 순세계잉여금은 1172억원으로 불어났다.시흥시 과천시처럼 곳간에 잉여금을 쌓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9일 한국공인회계사회와 재정성과연구원이 243개 전국 지자체의 지난해 예산·결산 지표를 분석한 결과 지자체 순세계잉여금(정보공개 거부 3곳 제외, 지역개발기금 포함)은 43조75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지자체들이 추가경정(추경)으로 마련한 예산(45조원)만큼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잉여금으로 쌓였다는 의미다. 지자체들이 추경을 남발했지만 정작 필요한 사업에 제대로 자금을 집행하지 못한 결과다. 지방정부 살림이 주먹구구식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자체 잉여금 3년 만에 두 배로

지자체 순세계잉여금은 2014년 20조7500억원에서 3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본예산 대비 순세계잉여금 비율도 같은 기간 9.4%에서 16.9%로 증가했다.순세계잉여금은 대부분 계획된 사업에 예산을 쓰지 못해 남은 돈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 취득세 등 지방세가 많이 걷혀 잉여금이 늘기도 하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다. 윤정원 한국공인회계사회 공공회계연구팀장은 “남은 잉여금이 다음해 추경에 편성되고 또다시 이 예산을 쓰지 못해 잉여금이 남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최종 예산 기준으로 순세계잉여금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경기 시흥시였다. 2년 연속 1위다. 시흥시는 작년 결산상 순세계잉여금(9066억원)이 최종 예산 1조9336억원의 46.8%에 달했다. 서울 강남구가 43.7%로 뒤를 이었다. 전남 무안군, 경기 과천시, 경남 진주시 등 30개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 비율도 20%를 웃돌았다. 김이배 덕성여대 교수(한국정부회계학회장)는 “기업은 잉여금을 남기면 주주 배당을 하거나 직원 상여금을 주는 순작용이 있지만 지자체 잉여금은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지방재정의 계획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라고 했다.

지자체장이 선심성 사업을 위해 예비비 명목으로 잉여금을 쌓아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의 재정학 교수는 “남는 돈이 있으면 주민을 위한 중장기 사업 계획을 짜서 목적에 맞게 써야 하는데, 용도 없는 예비비로 쌓는 지자체가 수두룩하다”며 “먼저 지출하고 사후 의회 승인을 받는 예비비는 자치단체장 재량으로 쌈짓돈처럼 쓸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지자체들은 중앙 정부 탓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매해 9월부터 다음해 예산안을 짜야 하는데 중앙 정부에서 국가보조금 규모를 늦게 통보해주기 때문에 지방에선 세입을 미리 예측하기가 힘들다”며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벌이는 사업(국가보조금 매칭 사업)에 대비하기 위해 잉여금을 남겨놔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18개 대도시의 지역개발기금이 순세계잉여금에서 빠지면서 통계가 왜곡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7개 광역시·도와 창원시의 지역개발기금 11조7000억원을 공기업 특별회계에서 기금 계정으로 바꾸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다. 애당초 기금에 편성해야 할 지역개발기금을 장기간 잘못 분류해오다가 되돌리는 것이지만 이로 인해 순세계잉여금은 지역개발기금이 빠진 만큼 줄게 된다.

187개 국고보조사업, 절반도 집행 못해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에 주는 국고보조금도 매년 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자체 최종 예산에 잡힌 국고보조사업비 70조3601억원 중 86.6%인 60조9030억원만 집행이 완료됐다. 14%가량은 여전히 주머니에 넣고 있다는 얘기다.

845개 지자체 국고보조사업 중 187개 사업은 지난해 보조금 집행률이 50%에도 못 미쳤다. 별내선 복선전철 사업은 국가보조금 957억원을 받았지만 집행률이 13.6%에 머물렀다. 부산사상-하단도시철도건설 사업은 660억원을 받았지만 집행률은 9%에 그쳤다.

보조금 집행률이 0%인 지자체 사업도 △국토교통부의 인천도시철도2호선 건설 △문화체육관광부의 생활체육 정보 제공 및 종목 보급 △보건복지부의 통합의학센터 건립 지원 △문화재청의 광주 세계유산 남한산성 박물관 건립 등 45개나 됐다.

국고보조금은 2013년 58조9528억원에서 지난해 70조3601억원으로 4년간 19.4% 불어났지만 체계적인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정섭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일부 지자체는 환경영향 평가, 투자심사, 타당성 조사 등 사전 절차를 고려하지 않고 보조금 따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보조금 집행 실적을 다음 보조금 지급 결정에 반영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예산

정부가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전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맨 처음 편성한 예산. 정상예산이나 통상예산으로도 불린다.

■추가경정예산

정부가 예산을 정식으로 편성하고 집행 단계에 들어간 이후 어쩔 수 없는 사유가 발생했을 때 추가로 편성하는 예산.

■순세계잉여금거둬들인 세금에서 지출금액을 뺀 나머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지출금액을 제외한 뒤 중앙정부에 보조금 잔액 등을 반납하고 최종적으로 남은 돈을 의미한다.

하수정/김진성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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