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석유비축기지 물들인 '빛의 눈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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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티스트 안종연 씨 개인전설치미술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안종연 씨(67)는 젊은 시절부터 눈과 마음, 영혼을 기쁘게 하는 빛의 의미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주가 빛이 있으라…’를 주문처럼 외우고 살았던 그는 먼발치에서 쏟아지는 빛을 화첩에 옮기며 ‘빛의 화가’를 꿈꿨다.
부산 동아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빛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빛의 세계를 3차원 형태로 조형화했다. 국내 굴지의 화랑 가나아트센터 전속적가였던 그는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유학한 뒤로는 ‘예술전사’처럼 빛의 세계를 공공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빛과 우주를 아우른 그의 작품은 2013년 삼성그룹 신경영 선포 20주년 기념작으로 선정됐고, 같은해 11월에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초대형 미술관인 에미리트팰리스에서 초대전을 열어 ‘미술 한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좌화취월’), 제주도 피닉스아일랜드(‘광풍제월’), 강원 동강생태공원(‘수광영월’) 등에 설치된 작품은 지역 명물로 꼽힌다.
평생 빛을 화두로 삼아 회화, 설치, 미디어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한 안씨가 내년 2월9일까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옆에 있는 문화비축기지에서 개인전을 연다. 축구장 22개와 맞먹는 14만㎡ 부지의 문화비축기지는 서울시가 2013년 산업화 시대 유산인 석유비축기지의 탱크와 옹벽 등을 그대로 살려 조성한 문화공간이다. ‘빛의 어머니’라는 별명의 소유자답게 이번 전시 주제는 ‘빛의 눈꽃송이’다. 6m가 넘는 미디어아트 대작과 가변 설치작품 등을 선보여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채로운 빛 체험을 제공한다.
안씨는 “지난 30년간 미술관의 벽을 넘어 많은 사람에게 공공미술을 선보여 왔다”며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면 예술적 소임은 끝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스테인리스스틸, 두랄루민, 유리, 돌 등 다루기 어려운 재료를 다듬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상적 풍경을 추구하면서도 개발 논리에 쓸려 사라져가는 자연과 생명의 근원(빛)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그를 가리켜 ‘빛을 짓는 수행자’라고 하는 까닭이다.높이 15m, 지름 15~38m의 전시장(탱크1)에 들어서면 안씨의 영롱한 빛의 미학이 울렁인다. 다양한 색구슬을 배치한 뒤 빛을 투영해 바닥과 벽, 천장에 눈 결정체를 연상시키는 빛 그림자를 새겨 넣었다. 투명 에폭시로 코팅한 검은 바닥은 빛의 강물처럼 보이고, 그 위에 영상으로 현현한 색깔의 LED(발광다이오드) 빛이 떠다닌다. 사람들은 전시장 밖으로 쭉 뻗은 길을 숲속 산책로처럼 누비며 안씨의 가변 설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작가는 “구슬, LED 빛, 미디어와 음악을 묶어 ‘힐링 탱크(healing tank)’를 연출했다”고 했다. 석유비축공간으로 쓰이던 전시장은 빛의 본색을 드러내기 좋은 조건을 갖췄고 단층으로 이뤄진 공간이 곡선의 맛을 극대화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LED 빛을 전시장 공간에 반사하며 우주의 향연을 펼쳐내는 신기루 같은 풍경이 자못 흥미롭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