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파 vs 해외파…서로 '역차별'이라는 가상화폐 거래소들

지난달 20일 서울시내 한 가상화폐거래소 전광판에 급락한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상화폐(암호화폐)엔 없는 ‘국적’이 거래소에겐 있었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한국시장을 놓고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뉘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서비스 경쟁보단 서로 ‘역차별론’을 펴는 형국이다. 암호화폐 시장 폭락, 거래소 포화 상태와 맞물려 내우외환이란 지적이 나온다.

◆ 공격적으로 국내 진출하는 중국계 거래소13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계가 주축인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잇달아 국내 시장에 진출하며 공격적 비즈니스를 펼치는 게 도화선이 됐다.

당장 이날 도비트레이드가 국내 진출계획을 발표한다. 지난 3일 오케이엑스가 베타서비스 중인 거래소 ‘오케이코인’ 정식 서비스 방침을 밝힌 지 열흘 만이다. 앞서 국내에 진출한 후오비코리아는 곧 원화 거래까지 지원한다. 바이낸스도 한국인 직원을 채용해 국내 시장 공략을 모색 중이다. 투자사 바이낸스랩을 통해선 신현성 티몬 이사회 의장이 주도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에도 투자했다. 이들은 글로벌 10위권의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란 공통점이 있다.

지난달 한국 진출을 선언한 BTCC, 이달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는 BCEX 등 중국계 거래소 역시 적극적이다. BTCC코리아는 거래소 공개(IEO)와 기술특례상장을 핵심전략으로 들고 나왔다. 거래소 선별·검증으로 신뢰도를 높이고 우수 기술력의 프로젝트를 선보이겠다는 의미다. BCEX코리아는 국내 거래소들을 직접 겨냥했다. “빗썸과 업비트로 양분된 국내 시장에서 다양하고 특화된 정책을 실시하겠다”면서 ‘6중 안전 메커니즘’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웠다.◆ '보이지 않는 규제' 탓에 '내수차별' 불만

국내 거래소들은 눈 뜨고 안방을 내주게 생겼다고 하소연한다. “손발이 묶인 채 경쟁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은행권이 중소 거래소들에게 가상계좌 발급을 하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은 부인하지만 시중은행들이 금융위원회의 무언의 압박으로 거래소에 계좌를 열어주지 않는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최근 후오비코리아가 국내 은행과 실명확인계좌 발급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국내 거래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들은 몇 군데 빼고 계좌 발급을 못하고 있는데 해외 거래소는 논의 중이라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또 다른 국내 거래소 관계자는 “공식적으론 규제가 없지만 현실은 한숨만 나온다. 계좌 발급이 막혔는데 정상적으로 비즈니스가 되겠나”라며 “소위 ‘보이지 않는 규제’가 국적에 따라 달리 작동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해외 거래소에 비해 국내 거래소는 당국의 유·무형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최근 오케이엑스의 무기한 선물 마진거래 개시 발표가 이러한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선물 마진거래는 일정 금액을 거래소에 예치하고 암호화폐를 공매도·공매수하는 방식. 국내 거래소 코인원이 도입했다가 검경 수사를 받은 적 있다. 위법성 여부에 대한 한경닷컴 질의에 오케이엑스가 “한국 고객 대상 서비스는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으나, 국내 거래소들은 “공세적인 해외 거래소와 당국 눈치부터 보는 국내 거래소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지난 1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가상화폐거래소 규제 관련 정책토론회. 국내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이석우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상 ‘내수차별’ 당한다는 얘기다. 국내 거래소 관계자는 “보이지 않는 규제가 국내 거래소들에겐 현실적 제약인 반면, 해외 거래소는 안 보이니 규제가 없는 셈치고 사업을 벌이는 느낌”이라고 귀띔했다.자금세탁 우려 등을 이유로 국내 거래소들의 해외송금이 막힌 것 역시 박탈감을 키웠다. 업비트·빗썸 등의 해외 사업에 걸림돌이 됐다. 해외 거래소들은 국내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하는데 국내 거래소의 해외 진출은 난관을 겪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이란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 "시대착오적 '국내 대 해외' 프레임" 반박

국내 진출 해외 거래소들은 도리어 자신들이 역차별 받는다고 반박했다. 후오비코리아의 경우 ‘국내 대 해외’ 프레임이 실명확인계좌 발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후오비코리아 측은 “은행 계좌 발급은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케이스다. 조심스럽게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대형 거래소가 중소 거래소 상황을 핑계로 국내파 대 해외파 구도로 몰아가는 것 같다. 정작 가상계좌 발급이 되는 곳은 국내 대형 거래소이고 해외와 국내 중소 거래소는 안 된다”면서 “이게 역차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송금 사안의 경우 외국인투자촉진법(외투법)을 적용받아 국내 거래소와 단순비교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베트남에서 사업하면 외투법 적용을 받는데 그것도 현지 기업이 역차별 받는다고 말할 건가”라고도 했다. 한 외국계 거래소 관계자는 “외국계라 해도 국내에서 일자리 창출하고 있는데 국내 대 해외의 편향된 프레임을 씌우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온라인에서 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하는 글로벌 비즈니스인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이 국적에 따라 갈린 셈이다.

거래소 국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한국적 갈라파고스 현상’도 도돌이처럼 당국의 규제 공백 탓으로 돌아온다. 이와 관련해 블록체인 전문가인 인호 고려대 교수는 “결국 정부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문제다. 제도 정비가 안 돼 거래소들이 묶인 측면이 크다”고 짚었다.하지만 금융 당국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금융위 송현도 금융혁신과장은 “금융위가 규제한 적도, 국내외 거래소를 다르게 취급한 적도 없다”며 “거래소 가상계좌 발급이 묶인 것은 자금세탁 우려 때문으로 안다. 발의돼 있는 ‘특정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AML)·고객신원확인(KYC) 의무가 명시돼 은행들이 (가상계좌 발급을) 보다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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