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랑의 묘약은 서로가 서로를 닮는 것

욕망의탄생

장 미셸 우구를리앙 지음 / 김진식 옮김
문학과지성사 / 347쪽│1만7000원
누구나 아버지, 어머니, 친구, 직장동료, 연인 등 수많은 이와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런 관계에서 정신적 고통을 주는 크고 작은 문제들과 마주친다. 가장 흔하면서도 육체와 정신 건강에 큰 해를 끼치는 문제는 커플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위기에 봉착하고, 헤어진다. 무엇이 이들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 하는 걸까.

인간 내면을 분석하는 ‘모방이론’을 임상 심리분석에 처음 도입한 프랑스 정신의학자 장 미셸 우구를리앙은 《욕망의 탄생》을 통해 커플들이 봉착하는 갈등과 복잡한 마음속에 ‘모방 메커니즘’이 숨어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욕망이 어떤 대상을 향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이란 주장이다.책에서 저자는 40년 동안 심리 상담을 통해 경험한 다양한 갈등 사례를 소개한다. 부자지만 늙고 병들어 헤어진 옛 남자친구와 젊고 능력 있으며 자신을 사랑해주는 새 남자친구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여성, 애인이 생긴 남편으로 인해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됐지만 헤어지지 못하는 가정주부, 각자 주장에 반박을 일삼으며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엘리트 커플, 아내에게 다른 애인을 만들라고 권하고 그 상황을 상상하며 즐기는 남편 등이다.

이들이 겪는 문제는 사실 어느 한쪽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욕망의 메커니즘, 즉 모방이론을 깨닫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게 형성된 남녀 간 삐뚤어진 경쟁은 서로 간 상호작용을 어긋나게 한다. 그는 “남녀 간 경쟁이 격화되면 상대에 대한 극심한 증오와 비난의 감정에 빠져들며 정작 경쟁하는 상대 자체에 대한 중요성은 줄어든다”고 말한다.

저자는 상대에 대한 욕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본질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소모적인 경쟁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작은 실마리도 제공한다. 사랑에 대한 욕망은 이들 ‘관계’ 속에 원인과 답이 숨어 있다. 인간을 서로 닮은 존재로 만드는 것, 또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을 지지하고 인정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 끊임없이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 모방 덕분에 인간은 더 나은 쪽으로 학습하고 변화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은 주어진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나의 정체성에 머물러 도태됐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기 욕망의 고유함과 정당성만 고집하던 태도에서 물러나 상대방의 욕망 역시 서로가 서로를 닮으려는 모방 메커니즘에서 시작됐다는 점, 다시 말해 ‘욕망의 타자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많은 이가 ‘사랑은 유한하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랑이라는 욕망 역시 이 같은 모방의 개념에서 이해하고 노력해 채우고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모방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모방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공감과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모든 사람, 그중에서도 커플들이 모방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모방에서 나오는 힘을 긍정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