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두 노동장관의 탄식…"문재인 정부 이렇게 못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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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쏟아진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2004년 어느 봄날,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관저에 칩거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환 당시 노동부 장관에게 ‘특명’을 내렸다. 노동계 대표들과 청와대에서 저녁식사를 해야겠으니 섭외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김 전 장관은 ‘007 작전’을 하듯 당사자들을 데리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철도노조와 화물연대의 잇단 파업에 정부가 엄정 대응하면서 노정관계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시기였다.
니어재단,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토론회
김대환의 작심 비판
"소득주도성장은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의 합작품
시장 무시하고 노동철학 빈곤"
이상수의 직격탄
"현 정부 책임지는 모습 안보여
문제 제기하면 변명만 한다"
당시 저녁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다. “내가 변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변했습니다. (한숨을 크게 내쉬며) 하루하루 국정을 챙기다 보니 변하지 않고는 안 되겠습디다.” 김 전 장관은 13일 니어(NEAR)재단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며 이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어설픈 진보·개념 없는 정치의 합작품”
김 전 장관은 이날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전 장관은 먼저 현 정부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의 합작품”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책을 집행하며 ‘겉과 끝’(실적)만 맞추려고 압박하는데, 이는 개발독재 시대에나 하던 행태”라고 했다.
고용 쇼크로 불릴 만큼 일자리 지표가 나빠진 것과 관련해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주원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부는 고용지표가 나빠진 원인으로 인구(감소) 추세 이유를 갖다붙이는데, 대학생과 초등학생을 씨름 붙이는 것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어떤 다른 이유를 대더라도 최저임금 빼고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정부 정책이 이미 노동시장에 들어와 있는 내부자 위주이다 보니 고용의 양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김 전 장관의 설명이다.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의 가치를 스스로 짓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규직 전환의 기본 지침은 공개채용으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존 비정규직에 가산점을 주되 취업준비생에게도 기회를 줬어야 한다”며 “그랬다면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허탈감이 그렇게 크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현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렇게 못할 수 있냐”고도 했다. 김 전 장관은 “최저임금 인상만 봐도 덜컥 인상해놓고 재정으로 보전하고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치니 카드수수료를 인하한다고 한다”며 “구조적 사고가 결여된 것이자 시장의 역동성을 무시한 것으로 노동정책 철학의 빈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가동된 고용노동부의 이른바 적폐청산위원회(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부의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판정 등과 관련한 문제는 법적으로 따져보면 되는 것이지 (공무원의) 정책 판단을 적폐로 모는 식의 사고는 문제”라며 “적폐청산과 정책 판단을 맞물리는 것은 대단히 초보적인 행정”이라고 꼬집었다.“변명만 할 뿐…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김 전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아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상수 전 장관도 가세했다. 이 전 장관은 “정치는 동기를 강조하는 심정윤리가 아니라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윤리가 우선돼야 하는데 현 정부는 책임지는 모습이 안 보인다”며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면 변명만 한다”고 지적했다. 13·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 전 장관은 정부와 정치권을 넘나들며 대표적인 노동전문가로 활약했다.
이 전 장관은 정부 노동정책의 오류로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관리 부족 △충분한 논의 없는 노동정책 처리 등을 꼽았다.이날 포럼에서 진보 쪽 발제자로 나선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두 전직 장관과 다른 의견을 내놨다. 이 교수는 “노동계에서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무현 정부 때처럼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며 “수십 년간, 짧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철저히 외면당해온 노동계의 절박함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병원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친(親)기업적 투자환경을 조성하긴커녕 노동개혁조차 한걸음도 못 나갔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이 친기업적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부가 경영계를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그보다도 (고임금 근로자가 아닌) 미취업자, 실업자들이 원하는 정책이라도 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 당분간 친노동 정책 기조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대기업 정규직 임금이 100이라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40 정도밖에 안 된다”며 “최저임금 인상처럼 1차 분배정책을 펴지 않은 채 2차 분배만으로는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노동계의 변화를 촉구했다. 정 이사장은 “요즘 노동계를 보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처럼 질주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시체 만지고 살인범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노동계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대승적 차원에서 노동시장 생태계를 위해 노사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학계에서도 쓴소리는 이어졌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 정책에는 세 가지가 없다”며 “국내 문제에 매몰된 데 따른 글로벌 인식의 부재, 과거와 현재에 집착하면서 생기는 비전의 부재, 보조금 살포 등으로 인한 효율성의 부재가 그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대통령의 현장 행보와 관련해 “모든 사람이 ‘최저임금의 방향은 맞지만 현장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현장이 힘들다는 뜻”이라며 “하지만 대통령은 ‘최저임금 방향은 맞지만’이라는 말만 듣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