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경제 어렵다" 첫 언급했지만…"정책 속도조절만으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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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경제팀 정책기조 바뀌나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폭설을 뚫고 충남 아산시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서진캠을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임명장 수여식에서 “현장과 직접 소통하며 기업의 투자 애로가 뭔지, 그 해결책이 어디 있는지 방법을 찾아달라”고 주문한 데 따른 취임 후 첫 현장 행보였다. 홍 부총리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경영 애로사항부터 듣기 시작했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장 3개월로 한정된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인한 애로를 호소하는 서진캠 경영진에 “정부도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 최근 위기의식 부쩍 강조하며 현장방문 잇따라
"투자 어려움 풀어라"…親노동 일색서 '기업 챙기기'도 나서
전문가 "정책 보완 넘어 소득주도성장 과감하게 벗어나라"
홍 부총리 취임 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정부 정책 방향이 ‘1기 경제팀’과는 달라질 것이란 느낌이 감지되고 있다. 친(親)노동 일방 기조에서 친기업에도 무게를 두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 주 52시간제 등 주요 정책에 대해 줄줄이 속도조절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경제 지표 악화로 지지율이 급락한 정부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소득주도성장 정책 전환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제조업 활력 잃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남도청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 보고회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 이유도 전통 주력 제조업에서 활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용지표 악화와 민생 어려움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경제가 어렵다’고 규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제조업에 혁신이 일어나야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난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부쩍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는 “적어도 고용 문제에서는 지금까지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엄중한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고용부를 질책했다. 같은 날 고용부 일선 공무원들을 만나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른가”라고 질문하며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한 것을 보고 고용부 직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최저임금에 이어 주 52시간도 속도조절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홍 부총리는 11일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이 예상보다 빨리 올라 부담을 주고 있다”며 “내년 5월이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2020년분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에 앞서 내년 1분기까지 결정구조 개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친정부 성향 공익위원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경제 영향을 고려해 결정되도록 바꾸겠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에 대해서도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움직임이다. 이달 말 끝나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처벌유예기간)을 연장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여부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도기간이 종료되면 산업현장에 혼란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를 받아들인 조치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3개월→6개월 또는 1년)도 노동계 반발로 연내 입법이 물건너갔지만 정부는 내년 1월까지 기다려보고 노동계의 적극적인 자세 변화가 없으면 2월부터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전문가, “속도조절은 한계…과감히 바꿔라”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정책 전환’을 부인하고 있다. 정부가 거시경제에 대해 내놓은 분석도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홍 부총리는 전날 ‘제1차 경제활력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근로자들의 가계소득이 증가하는 등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의 3축 경제기조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책 보완이 아니라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시장적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저임금을 시급히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많이 올린 부작용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기조를 바꾸지 않고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원/박재원/아산=성수영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