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의 영혼'이 살려낸 예멘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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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끄지 살해 뒤 위기 몰린 사우디, 평화협상 적극 나서끝이 보이지 않던 예멘 내전에 희망의 불꽃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내전 당사자인 예멘 정부와 반군이 13일(현지시간) 드디어 전쟁 개시 4년 만에 항구도시 호데이다에서 휴전하고 병력을 모두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예멘 국민 2천800만명을 금세기 최악의 인도적 참사로 몰아넣은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실마리가 처음으로 마련된 셈이다.
이런 급속한 진전의 원점을 되짚어보면 두 달 전 잔혹하게 살해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에 다다르게 된다.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카슈끄지는 10월 2일 개인 용무로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사우디에서 온 이른바 '협상팀'에게 살해됐다.
사우디 정부는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카슈끄지를 설득해 귀국시키는 게 이 협상팀의 목표였으나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자 현장 팀장의 판단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살해는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부인했다.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무함마드 왕세자로 향했다.
중동의 젊고 개혁적인 계몽 군주로 인식됐던 무함마드 왕세자는 순식간에 비판자를 토막살해하라고 지시한 잔혹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카슈끄지 살해와 연관을 부인할수록 무함마드 왕세자의 입지는 되레 좁아 들었다.그의 차기 국왕으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이 심판대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2015년 1월 부친 살만 국왕의 즉위와 함께 실권을 쥔 그가 주도한 강경한 대외 정책도 다시 부각됐다.
과감한 결단이라는 칭송은 무모하고 충동적이라는 혹평으로 급변했다.
예멘 내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사우디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두 달 뒤인 2015년 3월 예멘 내전에 군사 개입했다.
사우디의 압도적 물량 투입으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예멘 내전은 예상보다 강한 반군과 충돌하면서 장기화했고, 예멘 국토는 폭력, 질병, 기아가 동반된 참상의 무대가 됐다.
사우디는 미국과 유럽의 비호 또는 묵인 아래 예멘 내전의 원인을 반군과 우호적인 이란으로 온전히 돌릴 수 있었지만, 카슈끄지 사건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예멘 내전을 둘러싼 사우디의 책임론으로 카슈끄지 사건의 여파가 번졌다.
내전을 끝내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졌고, 미국마저 사우디를 압박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슬람권의 지도국이자 두 성지(메카, 메디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는 카슈끄지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은 권위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하는 급박한 위기를 맞았다.
유엔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11월 중순부터 사우디로 피신한 예멘 정부와 예멘의 옛 수도 사나에 있는 반군 지도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평화협상을 중재한 마틴 그리피스 예멘 파견 유엔 대사는 지난달 17일 "모처럼 되살아난 국제적 관심과 동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에 생존을 사실상 의지하는 예멘 정부가 이번에 평화협상에 나선 것은 사우디의 의중에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달 초 사우디는 예멘 반군이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 요구했던 부상자 해외 후송과 수감자 교환을 과감히 수용할 만큼 평화협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사우디가 카슈끄지 사건 뒤 예멘에 구호품을 대량으로 보낸 사실을 자국 언론을 통해 부각한 것도 예멘 내전을 둘러싼 책임론을 희석하고 인도주의적 면모를 보여 도덕성을 만회하려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예멘 반군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이란도 평화협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 복원한 제재를 맞서야 하는 이란으로선 국제사회의 우호적인 여론이 절실한 형편이다.
'예멘의 평화'라는 당위를 지지하는 쪽에 서는 것이 이란으로선 유리한 데다 사우디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평화협상이 성사되는 편이 자신과 밀접한 반군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클 수 있어서다.생전에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비판하고 조속히 이를 종식해야 한다고 했던 카슈끄지의 바람이 그의 사후에서야 비로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
예멘 국민 2천800만명을 금세기 최악의 인도적 참사로 몰아넣은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실마리가 처음으로 마련된 셈이다.
이런 급속한 진전의 원점을 되짚어보면 두 달 전 잔혹하게 살해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에 다다르게 된다.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카슈끄지는 10월 2일 개인 용무로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사우디에서 온 이른바 '협상팀'에게 살해됐다.
사우디 정부는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카슈끄지를 설득해 귀국시키는 게 이 협상팀의 목표였으나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자 현장 팀장의 판단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살해는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부인했다.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무함마드 왕세자로 향했다.
중동의 젊고 개혁적인 계몽 군주로 인식됐던 무함마드 왕세자는 순식간에 비판자를 토막살해하라고 지시한 잔혹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카슈끄지 살해와 연관을 부인할수록 무함마드 왕세자의 입지는 되레 좁아 들었다.그의 차기 국왕으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이 심판대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2015년 1월 부친 살만 국왕의 즉위와 함께 실권을 쥔 그가 주도한 강경한 대외 정책도 다시 부각됐다.
과감한 결단이라는 칭송은 무모하고 충동적이라는 혹평으로 급변했다.
예멘 내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사우디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두 달 뒤인 2015년 3월 예멘 내전에 군사 개입했다.
사우디의 압도적 물량 투입으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예멘 내전은 예상보다 강한 반군과 충돌하면서 장기화했고, 예멘 국토는 폭력, 질병, 기아가 동반된 참상의 무대가 됐다.
사우디는 미국과 유럽의 비호 또는 묵인 아래 예멘 내전의 원인을 반군과 우호적인 이란으로 온전히 돌릴 수 있었지만, 카슈끄지 사건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예멘 내전을 둘러싼 사우디의 책임론으로 카슈끄지 사건의 여파가 번졌다.
내전을 끝내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졌고, 미국마저 사우디를 압박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슬람권의 지도국이자 두 성지(메카, 메디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는 카슈끄지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은 권위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하는 급박한 위기를 맞았다.
유엔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11월 중순부터 사우디로 피신한 예멘 정부와 예멘의 옛 수도 사나에 있는 반군 지도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평화협상을 중재한 마틴 그리피스 예멘 파견 유엔 대사는 지난달 17일 "모처럼 되살아난 국제적 관심과 동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에 생존을 사실상 의지하는 예멘 정부가 이번에 평화협상에 나선 것은 사우디의 의중에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달 초 사우디는 예멘 반군이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 요구했던 부상자 해외 후송과 수감자 교환을 과감히 수용할 만큼 평화협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사우디가 카슈끄지 사건 뒤 예멘에 구호품을 대량으로 보낸 사실을 자국 언론을 통해 부각한 것도 예멘 내전을 둘러싼 책임론을 희석하고 인도주의적 면모를 보여 도덕성을 만회하려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예멘 반군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이란도 평화협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 복원한 제재를 맞서야 하는 이란으로선 국제사회의 우호적인 여론이 절실한 형편이다.
'예멘의 평화'라는 당위를 지지하는 쪽에 서는 것이 이란으로선 유리한 데다 사우디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평화협상이 성사되는 편이 자신과 밀접한 반군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클 수 있어서다.생전에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비판하고 조속히 이를 종식해야 한다고 했던 카슈끄지의 바람이 그의 사후에서야 비로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