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퇴짜 맞고 결국 '현행유지' 무게…'더 내고 덜 받는' 개혁 외면

국민연금 고갈 '나 몰라라'하는 정부
복지부, 국민연금 개편안 발표

4가지案 중 가장 유력한 '기초연금 인상안' 세금으로 충당
내년 11조·2022년 21조 들어…보험료율 인상 물건너갈 듯

소득대체율과 함께 보험료율 올리는 3·4안은 채택 어려워
기금 고갈도 찔끔 늦추는 데 불과…"재정안정화 포기한 것"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연합뉴스
정부가 1년여간 작업한 국민연금 개편안 네 가지 조합을 14일 내놨다. 당초 검토안에 없었던 ‘현행 유지안’이 포함됐다. 여기에 기초연금만 10만원 인상하는 방안이 더해졌다. 보험료 인상안도 포함됐으나 선택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연금개혁’을 포기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장 유력한 안은 국민연금은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만 40만원으로 올리는 안이다. 기초연금은 전액 세금으로 충당된다. 내년 예산만 11조5000억원(국비 기준), 2022년엔 20조9000억원이 들어간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지금 그대로’ 개편안 낸 정부

보건복지부는 14일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및 보험료율’을 네 가지 방식으로 조합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2003년부터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개편안을 내놓고 있다.

올해 추계 결과는 국민연금을 그대로 둘 경우 기금 고갈시기가 2057년으로, 지난 추계 때보다 3년 당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내놓은 계획안은 이에 대한 대응책이다. 기금 고갈을 늦추려면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고, 개편 취지이기도 하다. 복지부는 이를 외면했다.
복지부가 내놓은 첫 번째 안은 현행 국민연금 소득대체율(2018년 45%→2028년 40% 예정)과 보험료율(9%)을 그대로 두는 방안이다. “설문 결과 국민 절반이 현행 제도 유지를 원한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이 경우 기금 고갈시기는 2057년 그대로다. 2057년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 자문안에 따르면 기금 고갈 뒤엔 보험료율을 한꺼번에 25%가량으로 올려야 한다.

두 번째 안은 현 제도를 그대로 두되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2018년 25만원→2021년 30만원 예정)을 2022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이다. 세금을 더 들이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국민연금 개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안이다. 올해 기초연금 예산은 11조5000억원 규모다. 2022년 40만원으로 인상될 경우 필요한 예산은 20조9000억원에 달한다. 지금의 두 배다. 2026년엔 28조6000억원이 들어간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퍼주기에 급급한 안”이라고 평가했다.

보험료 인상 물건너갈 듯복지부는 소득대체율과 함께 보험료율 인상안도 제시했다. 3안과 4안이다. 3안은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이고, 보험료율은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씩 12%까지 인상하는 안이다. 4안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은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씩 13%까지 올리는 안이다. 둘 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이다.

그러나 재정 안정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이다. 3안과 4안의 경우 기금 고갈시기는 각각 2063년과 2062년으로, 현행 제도 유지 때 고갈시기(2057년)를 5~6년 늦추는 데 불과하다. 소득대체율은 두고 보험료율만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려면 보험료율을 곧바로 16%까지 올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다.

더구나 3, 4안은 채택될 가능성이 낮다. 이미 청와대가 보험료 부담 인상은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아 사실상 불가하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네 가지 안에 따른 노후 실질급여를 보면 2안이 101만7000원으로 가장 많다. 결국 2안으로 의견이 모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국민연금 개편은 국회에서 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회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내년에 보험료 인상안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진보성향의 시민단체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출신의 오건호 위원장이 이끄는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이날 “정부안에 현행 국민연금이 가진 재정수지 불균형을 개선하는 조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