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청출어람(靑出於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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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3
권대욱 < 휴넷 회장 totwkwon@hunet.co.kr >일찍이 공자는 사람 쓰는 아홉 가지 방법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먼 곳에 심부름을 시켜 충성을 보고, 가까이 두고 써서 공경을 보며, 번거로운 일을 시켜 그 재능을 보고, 뜻밖의 질문을 던져 그 지혜를 보며, 급한 약속을 해 그 신용을 보고, 재물을 맡겨 그 어짐을 보며, 위급한 일을 알려 그 절개를 보고, 술에 취하게 해 그 절도를 보며, 남녀를 섞여 있게 해 이성에 대한 자세를 보는 것이다.
사람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일은 더 중요하다.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것을 떠올려봐도 궁극엔 사람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사람을 쓰고 어떻게 기르며 어떻게 잡아둘 것인가. 이 명제야말로 기업이 모든 역량을 기울여 집중해야 할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잊지 못할 부하’를 물은 적이 있다. 45년 직장생활과 32년의 사장 생활에 어떤 부하인들 없었겠는가. 충성심이 높고 용맹하거나 지략과 지모가 많은 부하도 있었고, 이런저런 일로 속 썩인 부하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과연 나를 뛰어넘은 부하가 있었는가? 그런 부하를 길러냈던가? 만일 없다면, 아니라면, 과연 나는 훌륭한 상사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과연 윗사람의 보람이 무엇이겠나에 생각이 미친다.
청출어람이란 사자성어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의 집록인 《순자》 ‘권학편(勸學篇)’에 나오는 말이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뤘지만 물보다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란 말에서 유래했다. 쪽은 파란 물감의 원료로 쓰이는 풀이다. 만들어진 물감의 빛이 원료인 쪽보다 더 푸르다니. 바로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의 예를 말하는 것이다. 줄여서 청출어람이라 쓰기도 하지만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의 일곱 글자가 다 있어야 뜻이 명확하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이 무엇일까. 그것은 스승이 쌓아 놓은 업적에 제자의 노력이 더해졌다는 말이다. 또 청출어람의 부하를 뒀느냐는 상사의 업적에 부하의 노력이 더해져야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일 게다. 그러나 그것뿐이라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스승이나 상사의 업적과 제자나 부하의 노력만이 아니라 청출어람을 허용하는 스승과 상사의 마음일 것이다. 그것 없이 진정한 청출어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부하가 있었다. 그래서 또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