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어느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좌절

임유 바이오헬스부 기자 freeu@hankyung.com
“한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에 뛰어든 사람 중 규제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창업 5년차인 헬스케어 전문기업 엠트리케어 박종일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비접촉식 스마트 체온계, 이와 연동되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체온은 물론 주변의 온도·습도도 측정할 수 있고 상태에 맞는 해열제 복약량, 복약 시간, 복약 방법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이를 통해 600만 건의 영유아 체온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빅데이터로 지역별 독감 지도 구축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범법자 신세가 될까 걱정돼서다. 그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의료기기를 개발하려다 광고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사업모델이 엇비슷한 미국 킨사는 900만달러 이상을 투자받았는데 우리는 규제 때문에 영세기업을 못 벗어나고 있다”고 토로했다.보건복지부는 최근 ‘보건산업 창업기업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보건산업 분야 창업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창업기업 수(생존해 있는 기업 기준)는 4144개다. 이 가운데 의료기기·보건의료정보 업체는 60.1%인 2493개다. 헬스케어 분야 창업이 비교적 활발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헬스케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반응은 냉소적이다. 뛰어난 정보기술과 풍부한 의료 데이터, 접근성 좋은 임상 환경을 갖춘 우리나라가 한때 헬스케어 기업엔 최적지로 여겨졌지만 현실은 딴판이기 때문이다. 의료 빅데이터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는 등 규제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투자 유치액 기준으로 글로벌 톱100 헬스케어 기업에 국내 기업은 한 곳도 없다. 한국 인구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스웨덴 기업 세 곳이 포함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내년에 5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의료기기와 소프트웨어가 융합되는 게 글로벌 트렌드다. 하지만 한국은 점점 뒤처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체외진단기 허가 절차를 단축하겠다고 했지만 관련 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도 원격의료 금지법에 막혀 있다. 헬스케어 창업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