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김환기 '무제'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나는 동양 사람이고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해도 내 이상의 것은 할 수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1956년 44세에 홍익대 미대 학장 자리를 과감히 버리고 프랑스 파리로 예술적 여정을 떠난 수화 김환기 화백(1913~1974)은 평생 미술을 거대한 발견으로 생각하며 국제 무대에서 한민족의 정서를 살려내려 고심했다. ‘그림이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한다’고 틈만 나면 설파했던 그는 항상 새로운 눈으로, 처음 뜨는 눈으로 대상을 화면에 옮겼다.

1958년 파리 유학 시절에 그린 이 그림은 고유한 민족 정서를 국제 화단에 알리려는 염원을 담아낸 수작이다. 둥근 달을 배경으로 두 마리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냈다. 매화와 산의 이미지도 곁들여 한국 자연의 영혼은 물론 자신의 아호 ‘수화(樹話)’처럼 소통과 어울림까지 녹여냈다. 낯선 타지에서 세상과 대화하며 캔버스를 온통 푸른 바탕으로 물들여 고향의 하늘이자 동해 바다를 은유했다. 샘처럼 솟아나온 푸른 색깔과 두터운 질감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은은한 메아리 같은 여운을 남긴다. 고국의 산천과 한민족의 슬기에 귀를 기울였던 대가의 솜씨에 더욱 눈길이 간다. 이 그림은 지난달 21일 K옥션 경매에서 12억5000만원에 낙찰돼 새 주인을 찾아갔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